오늘 복음은 안식일 논쟁 중 한 대목이고, 제1독서는 탈출기의 중심 사건인 파스카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안식일"과 "파스카"는 얼핏 생각할 때 제각기 고유하고 독립적인 주제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한 뿌리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신명기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너는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를 하였고 주 너의 하느님이 강한 손과 뻗은 팔로 너를 그곳에서 이끌어 내었음을 기억하여라. 그 때문에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는 것이다."(신명 5,15)
탈출기에서는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후 이렛날에 쉬셨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창조에 방점을 두어 가르치는데 비해(탈출 20,11), 신명기 저자는 사뭇 다른 각도로 안식일에 접근합니다.
즉, 노예 상태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여 안식일을 지키되, 그 자유와 해방이 종이나 짐승, 이방인에게까지도 똑같이 적용되어 베풀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은 억지로라도 지켜야 하는 의무 조항이 아니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권리라는 말입니다.
필요하고 원할 때 쉴 수 없는 종이나 노예 신분이 아니라 하느님의 크신 위업으로 해방된 자유인 백성으로서 그 특별한 사건의 밤을 기념하기 위해 비워놓은 날이 안식일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사가는 "그때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마태 12,1)라고 첫 구절을 시작합니다.
이는 "이날 밤 나는 이집트 땅을 지나면서"(탈출 11,12)라는 파스카날의 정황 묘사와 흡사한 배열이지요. "지나가다"라고 중복되어 나타난 표현은 "거르고 지나가다"는 뜻의 파스카 의미를 상기시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파스카 축제의 식사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십니다. "그것을 먹을 때에는 허리에 띠를 매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서둘러 먹어야 한다."(탈출 11,11)
일반적인 식사 예법과는 거리가 먼 태도에, 먹어야 하는 음식 역시 급하게 장만한 것들이지요. 이런 것들이 용인된다는 것은 그 순간이 예의나 절차를 따지기 어려운 매우 화급한 찰나라는 뜻일 겁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은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기 시작하였다."(마태 12,1) 복음의 제자들 역시 나름 요기가 절실한 상태였습니다. 장정들이 온종일 스승을 쫓아다니느라 끼니를 걸렀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 모습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예의주시하던 바리사이들의 눈에 딱 걸린 것입니다. 죄목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마태 12,2) 한 죄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행동을 문제 삼지 않으시고 예외적 예시들을 들어 그들을 두둔하십니다.
안식일이 파스카의 정신을 제대로 잇고 있다면, 무죄한 어린양을 희생하는 것도, 내 백성의 해방을 위해 이민족의 맏이들을 죽이는 것도,
예법을 무시한 식사도, 배고픈 이들이 본때 없이 함부로 먹을 것을 구하는 행위도, 그 어떤 것도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일의 동기가 고역에 짓눌려 울부짓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에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있는 집에 발린 피는 너희를 위한 표지가 될 것이다."(탈출 11,13) 무시무시한 살육의 천사가 지나가던 공포의 밤, 이스라엘 백성이 무죄한 어린양을 잡아 피를 바른 집은 구원을 받습니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마태 12,8) 하느님의 무죄한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피가 인류를 구원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날 희생된 이집트의 모든 맏이들의 죽음까지 당신 몸에 짊어지시고 진정한 희생제사를 바치심으로써 이스라엘 민족만의 파스카를 온 인류의 것으로 확장하십니다. 그러니 이런 예수님이야말로 참으로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이렇게 안식일은 하느님 창조의 완성을 기리는 날이면서, 죄악의 굴레에서 해방된 파스카의 축복을 누리는 날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지키는 주일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어제에 이어 등장한 "안식"이라는 말씀을 통해 주님은 우리를 진정한 안식으로 초대하십니다.
하느님과 함께 충실히 일하고 하느님과 함께 거룩히 쉬는 삶, 종이 아닌 자유인으로서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삶, 여기까지도 참 좋고 소중할 테지만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를 완성하려면 아직 조금 더 가야 합니다.
안식일을 통해 종과 짐승과 이방인과 땅까지 숨 좀 돌리고 휴식을 누리게 하셨던 하느님의 뜻은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조건과 잣대와 규정을 거두고가난하고 소외되고 떠도는 이들에게까지 영육의 쉼자리, 쉴 틈을 내어 줄 때까지 우리의 안식은 아직 안식이 아닙니다.
모두 함께 진정으로 쉼의 권리와 축복을 누리게 될 때 비로소 안식이 완성될 것입니다. 이 거룩한 안식의 뿌리는 자비이고, 열매는 나눔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의무감 때문에 주일을 지킨다면 못지켰을 때 죄로 인식되고 그래서 성사를 봐야하니 율법에 갇혀 안식일의 주인이 아니라 종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안식일의 주인입니다.
자유와 해방의 축복을 누리기에 기쁨으로 충만하고 그 축복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거룩한 날이 됩니다. 이 축복으로 초대된 안식일의 주인이신 벗님을 축복합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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