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9.08.20.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dariaofs 2019. 8. 20. 05:48




슬퍼하며 떠난 부자 청년의 뒷모습을 씁쓸히 바라보며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려울 것이다."(마태 19,23)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부자가 단순히 돈과 재물이 많은 이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압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루카 12,21)일 것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하느님 사랑에는 목숨까지 거는 사람이 있는 반면, 여기서 말하는 부자는 좋다는 건 다 챙겨도 하느님을 소유하는 데는 별 열의가 없어 하느님과 그 어느 것도 맞바꿀 마음이 없는 사람을 가리키지요.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 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마태 19,29)


집은 살 곳을, 토지는 노동과 식량의 터전을, 가족은 역사를 잇는 구성원을 가리킵니다.


삶의 근본 요소들이라 할 수 있죠. 하느님을 선택하기 위해 이들을 버리고 떠나는 것은 목숨을 건 모험과 다를 바 없겠지만, 하느님께서 이 모든 것의 주인이심을 깨달은 이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기 때문입니다"(성녀 아빌라의 데레사).

백 배로 돌려받는다는 말씀은 모자람 없이 아쉽지 않게 충만히 되돌려받는 완전한 보상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을 소유함으로써 그가 무엇을 바쳤든, 바친 것은 물론 그 이상의 것도 얻게 되어 있습니다. 완전하신 하느님께서 "전부"를 지니시고 오셔서 그와 하나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마태 19,30)


서열과 우선순위가 중요했던 제자들을 위한 말씀이지만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말씀이지요. 하느님을 위해 버린 종류와 양, 정도의 가치매김은 세속적 시각과 상당히 다르리라는 뜻 같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누구도 자기와 타인의 희생과 봉헌를 평가할 수 없습니다. 그 가치는 오로지 하느님만 아십니다.

제1독서는 판관 기드온의 부르심 장면입니다.
"보십시오 저의 씨족은 므나쎄 지파에서 가장 약합니다. 또 저는 제 아버지 집안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자입니다."(판관 6,15)
미디안족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라는 소명에 기드온이 이처럼 고백합니다. 허세도 비하도 없는, 겸손하고 진실된 자기 인식이 명징합니다. 그저 솔직담백합니다.

겉 꾸민 재산을 내려놓고 하느님 앞에 설 때 이렇게 됩니다. 사실 자신의 부족함을 가리기 위해 인맥과 경력, 명품과 은행 잔고,


학력과 거주지를 내비치며 은근히 높게 평가되기를 바라는 모습은 그리 낯설지 않지요. 집과 가족과 토지 등 나를 치장하던, "나"가 아닌 것들(사실 하느님의 것들)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약하고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자신을 내비칠 수 있는 이는 참으로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기드온이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하고 조심스러워하는 듯 보이면서도 주님의 천사에게 묻고 싶었던 것, 하고 싶었던 말을 다 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지요.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주님의 이름 때문에 유형 무형의 재물을 다 내려놓고 가난하게 된 이는, 우리 때문에 가난하게 되신 하느님의 부유함을 대신 돌려 받습니다. 주님과 우리가 부유함과 가난을 서로 맞바꾸면서 구원으로 나아갑니다.


스스로를 작고 약하고 보잘것없다고 가식없이 고백할 수 있는 이는 자기가 작고 약하고 보잘것없음을 아는 덕에 하느님 구원의 도구가 됩니다.

"너의 그 힘을 가지고 가서 ... 구원하여라. 바로 내가 너를 보낸다."(판관 6,14) 오늘 벗님에게 하시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