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에서 구원의 공동체적 요건과 개별적 요건이 다가옵니다.
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열 처녀 비유에서,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명, 어리석은 다섯, 슬기로운 다섯 등 다수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나름의 공통분모로 묶인 이들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들이 '혼인 잔치에 오는 신랑을 기다리는' 공동 목표나, 어리석은 이들끼리, 또 슬기로운 이들끼리 비슷한 수준으로 모였다 해도 "저마다"(마태25,1) 갖춰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등"입니다.
하늘 나라를 고대하며 사는 우리는 모두 혼인 잔치에 오시는 신랑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는 처녀들과 같습니다.
교회는 '영원한 생명, 즉 구원'을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신부의 행복에 비유하지요. 비유 속 처녀들처럼 우리도 이 같은 목표로 기다림을 삽니다.
교회는 우리가 밤을 밝혀 신랑을 기다릴 수 있도록 저마다 "등"을 준비시켜 주었습니다. "등"은 우리가 받은 율법, 계명, 제도, 규범 등 신앙 생활의 아우트라인(outline)일 것입니다.
그런데 공통적으로 제시되지만 각자의 실존에 따라 간직하고 가꾸어가는 "저마다의 등"입니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성소 건립을 명하실 때 "등불이 끊임없이 타오르게 하라"(탈출 27,20)고 하셨듯이, 주님 앞의 "등불"을 각자 보살피고 돌보고 가꾸어야 합니다.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 신랑이 왔다"(마태 25,10).
그렇다면 열 처녀의 운명을 가른 "기름"은 무엇일까요? 물론 등불이 계속 타오를 수 있게 하는 연료지요. 우리가 받은 율법, 계명에 불이 활활 타오를 수 있게 해 주는 '정신'이고 '혼'이고 '사랑'입니다.
"기름"이 불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려면 우리가 신경을 써가며 남은 양을 가늠해야 하고, 새롭게 갈아넣고 채워주어야 합니다.
사랑으로 지펴진 불은 지속적인 회개와 쇄신, 포용과 개방성을 연료 삼아 계속 타오릅니다. 세상 구석구석에, 교회 구석구석에 드러나지 않게 존재하는 그 빛과 열기가 바로 교회의 밝기, 세상의 온도를 유지합니다.
나름 충분하리라 여겨 여분을 챙기지 않았던 다섯 처녀들은 늦어진 신랑 탓에 혼비백산해서 상인에게 달려가 기름을 사옵니다.
그렇다면 "기름"은 구입할 수 있기도 하네요. 다행히 그녀들은 "기름"으로 환산할 수 있는 비슷한 가치의 재화를 소유하고 있었나 봅니다. 꼭 등잔에 필요한 바로 그 "기름"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문제는 그 재화를 "기름"으로 바꾸는데 "때와 장소"에 격차가 있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상인이 있는 "곳"에 가서 기름을 사오는 "사이" 혼인 잔치의 문이 닫힙니다.
"지금 여기"에 있던 이들은 신랑과 만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지금 여기"에 부재하며 다른 곳을 헤매던 이들은 이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마태 25,13).
그리스도교에 들어선 순간부터 우리에게는 저마다 "등"이 주어집니다. 세례로 받은 성령이 첫 불을 당겨 주셨고 순결하고 거룩한 사랑이 이 불을 간직하게 해주었습니다.
주님의 은총과 이에 응답하는 우리의 영적 노력에 따라 불은 맹렬하게 활활 타오르기도 하고 조금씩 사그라들 때도 있지만 적어도 이 말씀 묵상을 만나기 위해 마음을 쓰는 우리의 등불은 아직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는 무지 때문에, 오히려 우리는 하느님을 향해 거룩한 긴장을 유지합니다.
사랑의 눈물을 모아 기름을 짜고 그릇에 간직했다가 등에 부어 불을 키우다 보면, "그 날과 그 시간"에 이 빛과 열이 신랑을 만나는 우리의 길을 밝혀주고 따사롭게 온기를 부여할 것입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거룩하게 살라고 권고합니다.
"하느님의 뜻은 바로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1테살 4,3).
우리는 이 말씀의 근거를 구약성경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9,2)에서 찾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 실천을 부부관계 안에서 이야기하지요.
바오로 사도는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부여된 십계명의 "간음하지 마라"라는 율법의 한 조항을, 그리스도인 부부들에게 거룩함이라는 보다 엄선된 등잔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등불은 존중과 신의의 기름으로 유지되고 정결한 향내를 풍기며 타오를 것입니다.
"더욱더 그렇게 살아가십시오"(1테살 4,1).
우리는 '주일 미사 지키고 교무금 내고 소임 잘 하는 게 어딘데...' 하며 기본으로 주어진 율법과 계명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것조차 제대로 소화 못 해 주님께 죄송할 일이 생기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는 받은 등잔만 잘 간직하다가 혼인 잔치에 들어가려 했던 어리석은 다섯 처녀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더욱더"라는 말씀으로 율법과 계명 이상의 분발을 요구합니다. 진정 사랑한다면 더,더,더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은 '충분함'을 모르기 때문이지요. 신랑 향한 열망과 혼인 잔치에 대한 간절함은 더 순수하고 순결하고 향기로운 기름을 마련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게 합니다.
언제일지 모르는 그 날과 그 시간을 위해 "지금 여기"에서 생존하기 위해 꼭 필요한 본질만 남기고 나머지를 과감히 버리고 떠나고 내려놓게 됩니다. "오직 중요한 하나"를 붙잡는 슬기입니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마태 25,6).
이 말씀이 울리는 순간, 가슴 터질 듯한 환희와 열락에 휩싸여 신랑 앞으로 뛰어나갈 수 있도록, 나날이 말씀과 함께 거룩한 기름을 준비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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