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9.09.01. 연중 제22주일 - 오상선 바오로 신부

dariaofs 2019. 9. 1. 05:05





오늘 미사의 말씀들에서는 높음과 낮음의 대비가 다가옵니다. 그리스도적 가치관과 세속적 가치관의 대비입니다.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루카 14,8).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윗자리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잘 아십니다. 어느 모임에나 상석이 있기 마련이고, 거기로 안내되는 이들은 다른 이들에 비해 더 높고 중요한 존재로 여겨지지요. 물리적 자리에서 사람의 가치가 판가름나니 자리에 목숨 거는 일이 전혀 이상하지만은 않습니다.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루카14,10).


모두가 오르려 경쟁할 때 오히려 내려가라는 말씀이시지요. 예수님의 이 말씀에 세속과는 정반대의 길을 선택하는 그리스도인의 역설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친히 "끝자리"를 차지하실 것입니다.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4,11).


어디나 끝자리가 있기 마련이고 누군가는 채워야 합니다.


그런데 자리에 더 민감히 집착하는 이들은 타의에 의해 밀려나 마지못해 끝자리가 주어지면 몹시 불편하다 못해 존재감까지 무너지기도 합니다. 내면이 튼실하지 않을 때는 자리가 곧 자기라 착각하기 때문이지요.

반면 자신이 하느님의 사랑받는 존재이며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인격임을 자각하는 이는 높낮이에 별로 신경이 가지 않습니다. 윗자리건 끝자리건 개의치 않는 자유를 소유했기에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스로 자신을 낮출 수 있습니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루카 14,13).


주제가 "자리"에서 "초대손님"으로 옮아갑니다.


세속적 가치관에서 역시 매우 중요한 이슈지요. 초청된 이들의 수준이 곧 잔치를 베푼 이의 수준이라 여기고, 누가 와서 자리를 빛내주는가는 잔칫집 주인의 명예와 직결되니까요. 여기서도 예수님의 가르침은 세속적 관념에 정면으로 대치됩니다.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루카 14,14).


물질적인 보답은 물론 영광과 명예까지 보상받으려 잔치 손님을 고르는 세태에서는 예수님이 제시하시는 이들의 존재가 곤혹스러울 수 있겠지요. 축복되고 흥겨운 잔칫집에 가난하고 소외되고 아프고 고통스런 이들의 출현이라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제 힘으로 보답을 못 하는 대신, 그들의 보호자이신 하느님께서 친히 보답을 해 주시는 존재들입니다. 지상 삶에서는 누추하고 불편하고 불안정한 허울을 쓰고 있지만 그 영혼만은 하느님 현존으로 꽉 찬 이들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세속적 시각으로만 그들을 보지 말고, 그들 안에 계신 하느님, 그들 어깨에 손을 얹어 그들을 보증해 주시는 하느님을 보라고 초대하시는 겁니다.

보답할 수 없는 이들에게 베푸는 행복을 이미 체험하신 예수님께서 그 행복을 나누고 싶어하십니다.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작고 낮은 이들을 감싸안음으로써 우리에게 쏟아질 하느님의 진정 어린 감사는 몇 푼 축의금이나 으쓱함 정도의 보상과는 차원이 다른 행복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온유와 겸손으로 초대하는 집회서 저자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정녕 주님의 권능은 크시고 겸손한 이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다"(집회 3,20).


겸손히 자기를 낮추며 주는 이와, 겸손히 가난을 받아 안는 이 모두가 주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주는 이나 받는 이나 겸손 안에서 서로 낮은 자리를 차지하려 다투어 내려가는 자체로 거룩합니다. 두 존재 모두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신 하느님을 닮았습니다.

제2독서에서는 시나이 계약의 장면을 언급하면서 진정한 구원은 물리적 장소나 자리, 위치에 있지 않음을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산이고 살아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천상 예루살렘으로"(히브 12,22).


우리는 하느님과 하나 되기 위해 옛 계약의 장소를 찾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응답한 그리스도인의 존재가 곧 어린양의 혼인 잔치의 신부인 천상 예루살렘이기 때문입니다.

출세지향인 현세의 삶을 살면서도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부단히 자신을 낮추고 겸손과 온유를 추구하며 보답을 바라지 않고 나누는 이들은 그 자신이 이미 혼인 잔치의 주인공입니다.


세속적 견지에서 끝자리는 어느새 신랑이신 예수님이 머무르시는 첫자리가 되었습니다. 그런 그리스도의 곁을 차지한다는 것은 외적으로 보여지는 끝자리나 낮춤에 그치지 않고, 영혼의 진실한 겸손과 낮춤으로 이어질 때 진정성을 획득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당신처럼 행복하라고 부르시는 예수님의 역설적 초대에 기꺼이 응답하는 9월 한 달 되시길 기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