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의 말씀들은 진정 권위 있는 말씀이 무엇인지 드러내고 있습니다.
복음의 사건이 벌어진 시간적 배경은 안식일이고, 공간적 배경은 회당이지요. 복음서 내용을 이리저리 반복해서 만나온 우리에게 불길한 예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은 공생활 초기라 아직 안식일이 논점이 되지는 않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예수님께 올가미가 되어 드리워질 것이니까요.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루카 4,32).
복음사가는 이 일화에서 "몹시, 모든, 몹시, 대체" 등 다소 과장이 느껴지는 강한 표현을 자주 사용하며 예수님께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설명합니다.
안식일에 회당에서 줄곧 설교를 들어왔을 보통의 유다인들이 놀라는 걸 보면 예수님의 말씀이 기존 종교지도자들과 많이 다르긴 달랐나 봅니다.
말씀의 권위를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요? 권위 있는 말씀은 과연 어떤 말씀일까요?
말씀이 우리 각자에게 다가와 우리를 감동시키고 변화시킨 체험들을 돌아보면서 답을 모아 봅시다.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우리의 구체적 실존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시선에서 나올 때, 미혹으로 뿌옇던 마음에 확신을 주며 안개를 걷어내어 주실 때, 그 말씀이 필요한 부분에 정조준되어 꽃힐 때입니다.
말씀이 이를 전하는 이의 사심이나 사욕으로 얼룩져 있지 않을 때, 자기 과시나 자기 영광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지향할 때, 군더더기 없이 단순한 진실을 전할 때입니다.
선과 사랑에서 출발한 말씀은 비슷한 지향을 품은 채 귀를 기울이는 이와 부딪혀 파열음을 내거나 튕겨나가지 않고, 순하고 부드럽게 흡수됩니다.
각자의 갈망과 필요를 감싸며 고요히 스며들어 듣는 이와 하나가 되지요. 모르긴 해도 그날 회당에서 예수님 말씀의 권위에 탄복했던 이들에게 그분 말씀은 그리 다가갔을 것입니다.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루카 4,34).
권위 있는 말씀의 반대 예를 찾아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얼마나 거칠고 소란스럽고 적대적이며 관계 파괴적인 "말"입니까! 두려움과 경계, 과시, 위협, 거부 등 어둠의 요소로 가득찬 "소음들"이 난무합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악의 말이 극명한 대조를 보여줍니다.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루카 4,35).
악에게 정면으로 던지신 이 말씀은 그 자리에서 곧 이루어집니다.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천지창조 때와, 주님 탄생 예고의 순간이 떠오릅니다.
말씀의 즉각적 실현은 창조와 강생의 순간은 물론 인류를 악에서 해방시키는 순간에도 이처럼 힘을 발휘합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아버지로서, 목자로서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둠 속에 있지 않으므로"(1테살 5,4).
"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이며 낮의 자녀입니다"(1테살 5,5).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미 하고 있는 그대로"(1테살 5,11).
이미 사도는 마치 고칠 게 없는 모범 답안을 체점하는 듯 느껴질 정도로 그곳 신자들의 신앙과 열성을 인정해 주며 계속 그렇게 하라고 독려합니다.
이 편지를 받아들고 읽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의 마음에 피어났을 흐뭇하고 뿌듯한 감사와 기쁨이 느껴집니다. 바오로 사도의 편지에 그를 통한 하느님의 말씀, 그분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일 겁니다.
"서로 격려하고 저마다 남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1테살 5,11).
이 마지막 말씀이야말로 듣는 이들에게는 생명이 되는 권고인 동시에, 우리가 "말씀"을 전할 때 어떤 지향으로 임해야 그 "말씀"이 진정 주님의 말씀이 되는지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과연 격려하는 말, 성장에 도움을 주는 말은 선과 사랑의 주님에게서 오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네"(복음 환호송).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하느님의 "말씀"께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렇게 오신 "말씀"께서 세상 한가운데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 아버지 오른편에 올라가십니다. 이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뚝딱 기적을 일으키지는 못하지만 자기 것을 빼고 진실되게 하느님 뜻을 전하다 보면 형제자매를 격려하고 성장시키는 "말씀"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나지막한 공감, 소소한 인정, 소박한 격려가 작은 치유를, 작은 해방을 일으키는 "말씀"이 될 것입니다. 아멘.
성 그레고리오,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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