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들은 우리에게 진정 희망하는지 물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루카 4,16).
오늘 복음의 대목은 예수님 지상 삶의 축소판입니다. 복음사가는 고향 나자렛에서 벌어진 긴박하고 험했던 순간에 예수님의 사명, 출생과 공생활 언급, 배척과 죽음(의 위협), 떠나가심까지 담아 기술하면서 하나의 사건에 복음 전체를 개괄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예수님의 오심으로 자유와 해방의 포문이 열렸습니다. 이 선포는 말씀이 소리내어 읽히는 데 그치지 않고 선포된 그 자리 그 순간에 완성됩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
예수님의 현존이 곧 사명의 완성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이고 또 지금 여기 계신 말씀이신 분 안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루카 4,23).
예수님은 당신의 출생신분 때문에 의구심을 갖는 동향인들의 마음을 읽고 계십니다. 그들은 방금 선포된 메시아의 해방을 당장 확인하고 싶어합니다. 그들은 즉각적으로 결과가 도출되어야 희망할 수 있다고 여기는 듯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엘리야, 엘리사 예언자 시대의 일화를 들어 그들의 기대에 제동을 거십니다. 메시아의 도래로 완성될 진정한 해방을 당장 그들의 환심을 살만한 기적으로 거래할 수 없으니까요.
궁극적인 해방이란 가난과 질병, 억압과 불평등의 근원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시작되지만, 종래에는 온 인류의 마지막 원수인 죽음까지 정복해야 완성된다는 걸 예수님 친히, 직접, 몸소 겪어내심으로써 보여주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예수님을 이해할 리 없는 동향인들은 화가 잔뜩 나서 그분을 벼랑 끝까지 몰아붙입니다. 단 한 명의 손끝만으로도 떠밀려 죽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지경까지 이르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루카 4,30).
부활의 전조라 할까요. 이미 동향인들의 증오와 살의로 죽음을 당한 것과 진배없는 순간까지 맞으시지만 담대히 당신의 길을 가십니다. 미움도, 배척도, 죽음도 멈출 수 없는 예수님의 발걸음에는 사랑의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주님의 재림과 부활의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음을 우리는 믿습니다"(1테살 4,14).
이 믿음이 곧 우리 희망의 근거입니다.
한때 사회 문제까지 되었던 휴거 사건이 말해주듯, 문자 그대로 공중에 들어올려질 날을 기대하는 심중에는 근시일 내에, 당장 눈앞에서 결과를 보려는 미숙한 실증주의와 조급증이 뒤섞여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로마 8,24)는 사도 바오로의 고백처럼 손에 잡힌다면 희망이 아닙니다.
해방은, 지금 각자 겪는 어려움과 고통, 장애, 질병에서 벗어남은 물론 미지의 때가 예약되어 있는,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해서도 적용되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강생으로 시작하시고 파스카로 완성하신 그 해방은 어느 날 어느 시로 국한된 사건이기에 앞서, 희망하는 이라면 누구나 선취해 누릴 수 있는 구원의 상태가 아닐까 합니다.
당장 눈앞에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믿고 희망하기에 영원한 생명을 사는 은총 말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그러므로 그날을 기다리는 우리는 기적과 이변과 신비를 꿈꾸며 맥없이 손을 놓고 주저앉아 있는 존재들이 아니라,
당장 뭔가를 주시지 않는다고 분노하고 돌아서는 존재들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희망을 붙들고 믿음을 다하여 사랑 안에 머무르는 이들입니다. 그 사랑이 곧 구원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1테살4,17).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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