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탈렌트의 비유를 통해 제자들이(우리가) 어떤 시각으로 하느님을 보고 있는지 물으십니다. 종들이 거둔 성과나 과오는 각자의 하느님관에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능력에 따라... 다섯 탈렌트, ... 두 탈렌트, ...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마태 25,15).
주인(주님)은 이미 종들의 능력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활용할 수 있는 탈렌트의 한도 또한 정해줄 수 있었지요. 그리스 화폐 단위인 한 탈렌트는 6,000 드라크마인데, 1 드라크마는 히브리 화폐로 1 데나리온입니다.
1 데나리온은 우리가 알다시피 일꾼의 하루 품삯입니다. 우리 식으로 환산해서 보면, 일꾼의 하루 품삯을 최저임금, 8시간 노동으로 7만 원이라 볼 때 6,000 데나리온(드라크마)인 한 탈렌트는 420,000,000원입니다.
제 계산이 맞다면 한 탈렌트가 4억 남짓한 돈이니, 20억, 12억, 4억을 종에게 맡기고 여행을 떠나기엔 통 큰 액수가 아닐까 싶습니다.
각 종들에게 부여된 탈렌트의 수량이 공정치 못하다고, 차별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각자의 능력을 잘 "아는" 주인의 역량과 재량을 볼 때 틀린 판단이 아님을 믿게 됩니다
또 탈렌트는 잘 활용해서 주인에게 유익이 돌아가도록 종에게 맡겨지는 것이지 각 개인의 소유나 전유물이 아님을 전제해야 하지요.
다섯 탈렌트와 두 탈렌트를 받은 종들은 이를 활용하여 그만큼의 액수를 더해 주인 앞에 내놓습니다. 대단한 능력입니다.
자기에게 맡겨준 주인의 뜻을 신뢰하고,자기를 믿어준 만큼 최선을 다해 결과를 낸 것이지요. 참 단순하고 담백합니다. 자기들을 있는 그대로 알고 믿어주는 주인처럼, 주인이 보여주는 모습 그대로 그분을 인식하고 신뢰한 결과입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마태 25,21).
물론 각자의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탈렌트의 양은 그리 적은 액수가 아닌 듯한데, 주인은 "작은 일에 성실"하다고 칭찬합니다. 당신이 맡긴 일을 "작은 일"이라 칭하는 주인의 겸손입니다.
사실 주인 입장에서 볼 때 액수의 많고 적음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당신에 대한 바른 인식과 신뢰, 순종이 주인을 기쁘게 합니다.
두 종들에게는 이제 "많은 일"이 맡겨질 것입니다. 이는 세속적 시각에서 쏟아질 일의 분량을 가리키기보다 주인과 더 자주 통교하며 접촉하는 친밀한 관계, 신뢰가 요구되는 일의 성격을 의미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그 종들에게 맡겨진 첫째 일은 주인과 기쁨을 나누는 일입니다!
받은 한 탈렌트를 숨겨 두었다 고스란히 되돌려준 마지막 종의 모습에서 분노가 아니라 안타까움이, 짠한 마음이 듭니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마태 25,24-25).
그는 자신이 안다고 생각한 대로 행합니다. 복잡하고 부정적이며 왜곡된 그의 앎은 두려움을 일으켜 진취적 사고를 멈추게 하고 가능성을 묻어 버립니다.
그런데 주인(주님)은 자신의 모습을 절대화해서 고정시키거나 그 모습을 우격다짐으로 강요하지 않습니다. 종이(우리가) 아는 대로, 믿고 고백하는 대로 당신을 드러내고 그에 맞갖게 대해 줍니다.
주인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이면 긍정적으로, 부정적이면 부정적으로 열매를 내줍니다. 사실 그런 시각에 고착된 종이, 우리가, 인간이 그런 결과를 바라는지도 모릅니다.
부정적일 경우, 썩 유쾌하진 않아도 이미 내면에 새겨진 상이 익숙할 테고 적어도 자기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도 보상이 되니까요.
제1독서에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내는 바오로의 칭찬과 권고가 이어집니다.
"조용히 살도록 힘쓰며 자기 일에 전념하고 자기 손으로 제 일을 하십시오"(1테살 4,11).
주님 뜻에 순종하여 동요 없이 살고, 맡겨주신 일에 자기 일처럼 전념하며, 스스로 성실히 임하라는 뜻일 겁니다.
주인을 바로 알고 신뢰하는 종의 자세지요. 이미 사도 바오로와 그 일행이 본을 보여준 그대로입니다. 이런 삶의 모습에는 주인에 대한 바른 인식이 무엇보다 중요한 조건이 될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맡겨주신 탈렌트라는 것이 단 하나일지라도 어마어마한 가치라는 걸 알겠습니다.
그저 소박하고 소소한 능력, 재능 정도로 여겨왔는데, 실제로는 그 안에 우리 각자에 대한 하느님의 앎과 신뢰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탈렌트 중 그 어느 하나도 자기 것은 없다는 것, 하느님의 영광과 공동의 이익을 위해 잠시 맡겨진 것임을 다시 일깨워 주십니다. 그리고 탈렌트의 충실한 활용은 하느님과 기쁨을 나누는 선물로 열매가 맺힙니다.
비교의식, 우월감, 박탈감, 실패에 대한 두려움, 무기력, 게으름은 하느님에 대한 왜곡된 인식의 산물입니다.
있는 그대로 나를 알고 믿고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있는 그대로 알아드리고 믿어드리고 사랑해 드리는 것이 아무 공로도 없이 엄청난 탈렌트를 부여받은 우리의 응답이어야 합니다. 착하고 성실하게 조용히...
8월 한달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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