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예수님과 첫 제자들의 만남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예수님 시선의 움직임을 바라봅니다.
"그 배에 앉으시어 군중을 가르치셨다"(루카 5,3).
"말씀을 마치시고 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루카 5,4).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루카 5,10).
먼저 예수님은 군중을 대상으로 가르치십니다. 아마도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을 포괄적이고 보편적으로 선포하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모여든 이들의 다양한 연령대와 다채로운 신분, 저마다의 심연이 알아듣고 소화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군중을 대상으로 하시던 말씀을 마치시고 예수님은 그물을 씻고 있던 어부들에게 눈길을 돌리십니다. 시선이 보편적 대상에서, 목적과 과정을 공유하는 보다 작은 그룹으로 옮아간 것입니다.
피곤에 젖은 그들은 어깨마저 쳐져 있습니다. 밤샘과 고된 노동에 시달린 채 아무 소득이 없이 새날을 맞은 빈손입니다. 묵묵히 그물을 손질하고는 있지만 저마다 염려와 불안, 실패와 좌절감으로 마음이 시끄러울 법하지요.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루카 5,4).
예수님이 권고는 고기잡이로 잔뼈가 굵은 그들에게 다소 어리둥절한 해법이었지만 어부들은 자기들의 현재를 이해하고 내미는 관심의 손길에 순종합니다. 함께 따라서 "그렇게 하자" 함께 기적을 체험하지요.
놀람과 두려움에 휩싸인 어부들 중 시몬 베드로가 먼저 예수님께 다가가 그분 "무릎 앞에" 몸을 던집니다.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루카 5,8).
어부들에게로 옮아갔던 예수님의 시선이 이제는 한 개인에게 꽃힙니다. 큰 무대에서 전체를 비추던 조명이 한 그룹으로 모여지다가 한 사람을 클로즈업 하는 듯한 흐름이 보입니다. 이제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의 눈길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 말씀대로 깊은 데로 나아가 고기를 잡는 사이, 본인 자신의 깊은 데를 보아 버린 것 같습니다. 두서없이 죄인이라 고백하는 그의 다듬어지지 않은 투박한 외침은 진솔한 자기 인식과 경외심에서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사실 원죄에 물든 우리 인간은 자기 내면 깊은 곳으로 내려갈수록 어둠과 죄악의 상처를 맞닥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적당히 세상과 손 잡고 눈 맞춰 살아가느라 아래로 아래로 밀어낸 자기의 또 다른 진실이 거기서 또아리를 틀고 빛을 기다리며 살아 꿈틀댑니다.
이를 발견한 시몬 베드로가 소스라쳐 주님을 밀쳐내려 하지만 이미 모든 걸 알고 계시는 예수님은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우리 각자를 주의 깊게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시선은 우리에게 자기 어둠과 죄악을 파고들어 더 깊이 상처내고 헤집어 버리라고 종용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심연에서 은총을 길어올려 고유한 소명을 찾아 주십니다.
그래서 죄인을 운운하고 뒷걸음질치면서 예수님을 밀쳐내려는 시몬 베드로에게 사람 낚는 제자의 사명을 부여하시고 당신을 따르도록 하시지요.
"그들은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루카 5,11).
분명히 "모든 것"을 버렸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에는 직업과 가족, 재산은 물론 저마다 심저에 간직한 어둠과 죄악과 약함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종종 우리는 예수님은 개의치 않으시는 그 깊은 곳의 실체들은 제대로 내버리지 않고 주섬주섬 챙겨들어 돌덩이처럼 가슴에 감추고는 버거워합니다. 자책하고 절망하며 자격을 운운해 자신과 부르신 분을 들볶기 일쑤입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콜로새의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간청합니다. "영적 지혜, 깨달음, 하느님을 아는 지식, 선행, 힘, 강인함, 인내, 상속의 몫, 자격..." 등
그들을 위한 바오로의 기원은 온갖 영적 선익으로 충만하지요. 그리고 이 모든 축복의 근원은 마지막 구절에 담겨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이 아드님 안에서 우리는 속량을,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콜로 1,13-14).
하느님 사랑을 배반한 첫 원조에게서 시작된 죄의 상처는 우리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한계로 자신을 몰아넣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위축되고 겁에 질려 시몬 베드로처럼 제가 떠나든지 당신이 떠나 달라고 맘에도 없는 푸념을 내뱉기도 하지만, 실은 우리에게 이처럼 죄의 용서와 속량이 진작에 주어진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 구원을 알리셨네"(화답송).
이 물러낼 수 없는 구원의 약속 덕분에 아무 공로 없이 하느님의 자녀, 주님의 제자가 된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릴 때 제대로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저마다의 "깊은 데"에서 어둠과 죄악의 상처에 매몰되어 주저앉지 말고,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의 나라에서 받는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콜로 1,12)해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루카 5,10).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다정한 권고입니다. 이 말씀에 이어 각자에게 덧붙여 주시는 소명에 겸손히 귀를 기울이며 주님께 깊이 감사드리는 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 "이제부터 너는 ( )가 될 것이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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