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에 이어 오늘의 말씀도 기도에 대해 가르치고 계십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루카 11,9).
우리가 청하고 찾을 것은 어제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 안에 다 들어 있는데 무엇을 더 찾고 청하고 두드리라는 말씀일까 곰곰이 머물러 보았습니다.
설마 우리 안 저 깊은 곳의 숨은 욕망 - 돈과 집과 자동차, 명품과 승진과 합격, 인기와 명예와 권력 - 을 청하고 찾으라는 뜻은 아닐 것 같은데 과연 주님은 무엇을 더 주시려는 것인지요.
"주님, 저희 마음을 열어 주시어 당신 아드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복음
환호송).
문득 복음 환호송의 말씀에서 그 실마리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제 손을 잡고 말씀의 기도로 데려가셨습니다.
미사 준비를 위해 다음날 미사 독서들(입당송, 독서, 화답송, 복음 환호송, 복음, 영성체송)의 성경 말씀을 읽고 또 읽습니다
전례 시기와 축제일에 따라, 혹은 이어지는 매일 미사의 흐름과 전후 문맥에 따라 의미를 찾으며 그 안에서 특별히 다가오시는 말씀을 기다립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이 쉽고 명확히 드러날 때도 있고, 더 깊이 머물고 숙고하며 반복해 되뇌여야 희미하게나마 떠오를 때도 있습니다.
다가오신 그 말씀에 머물러 묵상을 합니다. 그런데 이때 분심과 잡념이 사방에서 쿡쿡 찔러대기도 하고 상상과 기억이 끼어들고 싶어하기도 합니다.
설령 발을 헛디뎌 그런 데에 정신이 팔리더라도 얼른 제 자리로 돌아옵니다. 말씀께서는 어디 가지 않으시고 그 자리에서 저를 기다리고 계시지요.
다시 말씀 앞에 앉아, 오늘 주님께서 지금 여기에 있는 나에게 전해주고 싶은 의미가 무엇일까 포기하지 않고 머무를 때, 바로 이 순간 오늘의 복음 말씀이 좋은 안내자가 됩니다.
"줄곧 졸라 대면 ...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루카 11,8).
우리가 기도 안에서 청하고 찾고 두드려야 할 것은 앞에 나열한 세속적 부와 힘이 아니라 바로 말씀이 아닐까 합니다.
말씀을 청하고 그 의미를 찾고 문자와 문법의 닫힌 문을 끈질기게 두드릴 때 말씀 안에 계신 하느님께서 당신을 드러내어 주실 것이니까요. 사실 피조물인 우리가 바랄 것은 단 하나입니다.
주실 것이 확실한데 부분적이고 국지적이고 일시적인 것을 달라고 할 이유가 없지요. 우리가 청하고 찾고 바랄 것은 바로 "모든 것"이시고 "전부"이신 하느님뿐입니다.
그 하느님을 소유하면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 별것도 못 되는 일부분에 한눈 팔거나 마음을 빼앗길 이유가 없지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루카 11,13).
성령!!!
그분은 곧 하느님 자신일 뿐만 아니라, 말씀을 만나고 알아듣고 소유하게 해주시는 키워드입니다.
이 말씀은 먼저, 말씀이 기록되도록 영감을 주신 성령께서 지금 여기 말씀 앞에 있는 나에게 그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영감을 일으켜 주실 것이라는 희망입니다.
그리고 아울러 "너희가 무엇이든 아버지인 나에게 청하면, 나는 모든 것의 주인인 나 자신을 너에게 주겠다"는 어마어마한 자기 증여의 선언이고 약속이기도 합니다.
제1독서인 말라키 예언서는 구약 성경의 마지막 책입니다. 바빌론 유배에서 귀환한 뒤 예루살렘 성전과 도성 재건에 관해 이야기한 (우리가 얼마 전까지 만난) 하까이 예언서나 즈카르야 예언서보다 삼사십 년가량 뒤에 쓰인 책이지요.
"하느님을 섬기는 것은 헛된 일이다. ... 무슨 이득이 있느냐?"(말라 3,14)
성전과 도성 재건의 열정이 사그라들고, 기대했던 희망의 때가 선뜻 보이지 않자 백성들은 과거의 악과 다시 타협하며 신심을 잃고 회의에 빠집니다.
그러나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여전히 존재했기에 주님께서도 그들의 기도에 주의를 기울여 들어 주시고"(말라 3,16 참조) 예언자는 그들의 신앙을 격려하는 주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나의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르리라"(말라 3,20).
사실 그 어느 때보다 꾸준함과 항구함이 필요한 시기였을 겁니다. 당장 코 앞에 구원과 번영을 드러내 달라고 을러매다가 이내 포기하고 등 돌릴 것이 아니라, 끈질기게 묵묵히 겸손과 신뢰의 마음으로 하느님의 때를 기다려야 했지요.
실제로 말라키 예언서의 이 말씀은 당시에 당장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세기를 건너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치유를 날개에 싣고 오시는 의로움의 태양, 바로 구원자이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시지요.
기도가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말씀도 그렇습니다. 알라딘 램프나 요술 지팡이처럼 내 욕구를 손쉽게 당장 짠~ 하고 이루어주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일단 믿음과 신뢰를 갖고, 묵묵히 항구하게 꾸준히 머물러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사이, 우리의 양심과 성령의 영감이 고운 채가 되어 모든 사사로운 자기중심적 탐욕을 걸러내지요.
이 과정에서 우리 안에는 "하느님께서는 내게 좋은 것을 주신다"는 확신이 생기고, 더 나아가 "하느님께서 내게 주시는 건 다 좋은 것"이라는 깨달음에 이르게 됩니다.
바로 이때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당신 자신을 주십니다. 드디어 모든 기도의 목표가 이루어지는 순간이지요.
그러니 우리 모두 말씀 앞에서 섣불리 실망하지 말고 겸손과 정성과 신뢰와 끈기를 다해 머무릅시다.
기도할 때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청한 것은 이미 받아들여졌다고 믿읍시다"(1요한 5,15 참조). 우리가 주님께 진정으로 원하고 바라면 이미 얻은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화답송)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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