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9.10.07.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dariaofs 2019. 10. 7. 00:00



오늘의 독서와 복음은 성경의 여러 내용 중에서도 재미와 흥미, 의미를 두루 갖춘 일화들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 내재된 다양한 교훈들을 비집고 오늘은 제게 "방향성"에 대한 말씀들이 다가오셨습니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루카 10,29)


율법 학자는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또 제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질문을 던집니다. 자기 본위의 의도를 품은, 순수성이 결여된 질문들이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속셈이 빤히 보이는 율법 학자의 접근을 밀쳐내지 않으시고 우리가 잘 아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려 주십니다.

"어떤 사제가 ...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루카 10,31-32).


강도 만나 초주검이 된 이를 보고 두 사람이 반대쪽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나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서 멀어지는 방향성을 선택한 것은 분명하지요.

십분 양보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면, 전례 봉사를 위해서 죽은 몸에 닿아 불결한 상태가 되면 곤란하니까 그랬을 거라고 두둔해 주고 싶지만,


실상 사제나 레위인은 예리고로 "내려가는" 길이었다고 서술하니 아마도 예루살렘에서 이미 예식을 마치고 난 뒤일 것 같아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어떤 사마리아인은 ... 그를 보고서는 ... 그에게 다가가"(루카 10,33-34).


먼저 예수님은 유다인이 멸시하는 사마리아인을 등장시켜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는 조건에서 민족적 순혈주의를 제거해 버리십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는 피의 순수성이나 신분적 자격 요건이 아니라 이웃을 향해 다가가는 방향성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방향성은 하느님께서 마음에 일으켜 주신 "가엾은 마음"(루카 10,33)에 순종함으로써 시작됩니다.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루카 10,35).


강도 당한 이를 정성껏 돌보아 주었지만, 마냥 이곳에 머무를 수만은 없었던 그가 여관 주인에게 두 데나리온을 주며 부탁합니다.


추가 비용이 들면 돌아올 때 갚겠다는 약속까지 하면서요. 사마리아인은 다친 이가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단지 그가 상처 입고 죽어간다는 사실, 인간 존엄성이 훼손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정성과 시간, 재산을 들여 그를 돌봅니다.


사마리아인은 여관 주인의 방향성까지도 강도 만난 이에게로 향하게 만듭니다. 방만 빌려주면 되는 여관 주인에게 관심과 돌봄, 헌신의 몫을 나누어 줌으로써 그 역시 "이웃"의 자리로 초대하는 것이지요.

제1독서에서는 요나 예언자에게 니네베로 가 당신 뜻을 전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내립니다.

"주님을 피하여"(요나 1,3.10).


그런데 그는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의 반대쪽으로 몸을 돌립니다. 주님을 피하는 것은 그분 말씀을 듣지 않겠다는 거부 의사 표시로, 결국 주님이 구원하시려는 니네베를 외면한다는 뜻입니다.


요나는 죄악으로 상처 입고 죽어가는 이방 도시 니네베 사람들의 구원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을 이웃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지요.

"선장이 그에게 다가가 말하였다"(요나 1,6).


폭풍을 만나 모두들 울부짖는데 천연덕스럽게 잠에 빠진 요나에게 선장이 다가갑니다.


이 다가감으로 폭풍의 원인이 밝혀지고 요나는 하느님께서 설정하신 궤도로 돌아올 기회를 얻게 되지요. 선장의 관심과 다가감은 비록 당장의 위기 때문이기는 하나 결국 모두를 구하게 됩니다. 배에 탄 이들과 요나, 니네베 사람들까지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시켜 요나를 삼키게 하셨다"(요나 2,1).


자청해 바다에 내던져진 요나에게 이번에는 큰 물고기가 다가갑니다. 그를 삼키고 분해하고 흡수해서 제 살과 피로 만들려는 의도가 아니라 주님의 명령에 따라 그를 잠시 품고 있기 위해서입니다.


큰 물고기 역시 이 순간 요나의 이웃이 되어 준 것입니다. 사흘 후 육지로 그를 뱉어 내어 요나가 자기 방향성을 찾아 나아가게 될 때까지 주님께서 큰 물고기를 요나에게 허락하신 것이지요.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루카 10,29).


이제 우리는 율법 학자의 질문에 답을 찾았습니다. 바로 방향성이 이웃을 결정하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하느님께서 일으켜 주시는 "가엾은 마음"에 순종해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다가가는 이가 이웃입니다.


이 방향성과 접근성은 물리적으로 직접 표출되어야 하는 것만이 아니라, 간접적으로나마 심적, 정서적, 영적으로 표현될 수도 있습니다.

강도 만난 이처럼 당장 시급하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웃도 있고, 따뜻한 인사와 관심으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이웃도 있습니다. 묵묵한 동행과 지켜봄이 필요한 이웃도 있고, 먼 발치에서 기도로 격려하고 응원해 줄 이웃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웃은 일방적이 아닌 상호적 개념이고 관계이기에 내가 다가가고 내어준 만큼 나 역시 받게 됩니다. 이웃이 되어줌으로써 이웃을 얻는 것이니까요.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


"가서"!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나아가고, 다가가라고 하십니다. 이웃이 누구인지 알았다면 "가엾은 마음"(루카 10,33)과 "자비"(루카 10,37)를 품고 다가가서 이웃이 되어 주라는 명령입니다.


이 발걸음은 도움이 필요한 이(대상)와 도움을 주는 나(주체) 뿐만 아니라 타인도 구원 행위에 참여시키게 됩니다. 이웃이 확대되면서 선이 확장됩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가서 그렇게 합시다! 오늘 우리가 향하는 단 한 명의 이웃이 내게는 한 명이지만 우리가 모이면 백 명이 되고, 천 명이 되고, 온 세상 모든 인류까지 확장될 수 있습니다. "Just do it!"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