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9.10.05. 연중 제26주간 토요일

dariaofs 2019. 10. 5. 05:03



오늘 미사 독서의 말씀들에는 어제와 달리 기쁨과 희망이 깃들어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루카 10,17).


일흔두 제자가 첫 선교 여행을 마치고 신이 나서 돌아와 스승님께 외칩니다. 복음서 저자는 "말하였다"고 썼지만, 그 마음에서 울렁이는 기쁨이 마치 외침처럼 들려옵니다.

"주님의 이름 때문에!" 제자들은 선교지에서 이루어진 성공이 무엇에 기인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이 갖는 힘, 그 권능을, 치유받은 사람이나 구경꾼들보다 그 이름을 간직하고 있던 제자들이 더 생생히 체험한 것입니다.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루카 10,20).


참 놀랍지요! 주님의 이름을 지니고 파견되었던 제자들의 이름이 하늘에, 곧 하느님 심장에 새겨지게 되었다니 말입니다.


영들이 복종한 일이 기쁘다면, 자신들이 지닌 주님의 이름을 "믿은" 덕분에 하느님 안에 자리를 얻게 된 은총은 얼마나 더 크고 기쁜 일이겠습니까!


그런 제자들을 바라보시는 예수님도 "성령 안에서 즐거워"(루카 10,21)하십니다. 선교 여행이 그리 순탄했다니 아직 고통의 잔은 그들 몫이 아닌가 봅니다.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루카 10,21).


제자들은 세상 눈으로 보면 철부지들입니다. 그들 중에는 저명한 바리사이나 율법 학자도 없고 사제도 랍비도 아닌 어부, 세리 등 보통의 단순한 이들이지요.


그들을 부르신 주님은 세상이 인정하는 지혜와 슬기 대신, 새로움의 씨앗을 품어 싹을 틔워낼 마음밭의 상태를 보신 듯합니다. 제도와 기득권으로 다듬어지지 않아 더 순수하고 생명력 넘치는 불모지에 가까운 영혼이 철부지일 것 같습니다.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루카 10,22).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는 존재는 오직 아들뿐인데, 그 아들이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이도 이 엄청난 행운의 주인공이 된다고 하십니다.


누구를 선택해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실지 그 선택권은 오로지 예수님께 달렸습니다. 바로 오늘, 철부지 제자들이 그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유배 상황 안에서 희망이 선포됩니다. 예루살렘의 죄와 그들에게 내린 재앙이 민망할 정도로 낱날이 반복되어 언급되지만, 그 처참한 단어들 사이로 실낱같은 희망의 메시지가 비추입니다.

"아이들아, 용기를 내어 하느님께 부르짖어라"(바룩 4,27).


용서를 청해 보셨습니까? 진정으로 어린이의 마음이 되지 않고서는 온전히 자기를 낮추어 죄를 고백하고 자비를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세상적 지혜와 슬기를 짜내어 도망갈 구멍을 마련하거나, 이중적 의미의 단어를 써서 슬쩍 책임을 감소시키거나, 장황하게 본질을 흐리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하지만 아이들은, 철부지들은 그러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아이들아!" 하고 부르시는 겁니다.

절망과 고통의 끝에서 하느님의 자비 외에는 달리 희망이 없는 지금, "용기를 내어 하느님께 부르짖으라"고 하십니다.


백성의 죄악에 노하셔서 잠시 재앙을 퍼부으신 하느님의 마음을 돌리려면 세상의 지혜와 슬기가 아니라 "용기"가 필요하니까요.


아이들처럼, 철부지처럼 아버지 품에 달려들어가 더 깊이 파고들어 매달리며 그 사랑과 자비에 호소하는 용기의 밑바닥에는 순박하고 단순한 믿음이 자리합니다.


"주님은 불쌍한 이의 간청을 들어 주시고 사로잡힌 당신 백성을 멸시하지 않으신다"(화답송). 그들이 아는 아버지는 이런 분이시니까요. 그리고 이 아이다운, 철부지다운 믿음을 아버지 하느님은 결코 밀쳐내실 수 없습니다.

"그분 이름을 사랑하는 이들이 그곳에 살리라"(화답송).


주님의 이름을 지니고, 그 이름에 기대어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은 자기의 이름을 세상의 눈과 귀가 아니라 하느님의 심장에 새겨 넣습니다.


세상이 주는 명성과 찬사가 아니라 주님이 부르시는 "철부지"라는 호칭과 애틋하고 따사로운 눈길이 그저 기쁘고 행복합니다.


그들은 설령 넘어지고 엇나가더라도 이내 아이처럼 아버지의 품을 찾아 달려들 수 있습니다.


그들이 지닌 주님의 이름이 아버지께 자석처럼 이끌리고, 아버지 심장에 새겨진 자기 이름이 그들을 끌어당기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사랑하는 이들이 살 곳은 하느님의 심장입니다.

오늘 모든 일을 '주님의 이름으로'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벗님의 이름을 하늘에 기록하시는 행운을 입으시길 축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