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9.10.02. 수호천사 기념일

dariaofs 2019. 10. 2. 03:58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셔서 지상 삶을 살아가게 하시면서, 각자에게 수호 천사를 붙여 주셨습니다. 이는 험하고 거친 지상 순례길을 걷는 약하고 가련한 우리에게 필요할 순간마다 힘과 용기가 되어 주라는 그분의 섬세한 배려라 할 수 있지요.

"그는 내 이름을 지니고 있다"(탈출 23,21).


이름이 곧 현존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지닌 존재는 하느님을 품고 있고 그분의 뜻과 마음으로 움직입니다. 우리에게 보내 주신 천사는 그 자체로 하느님의 현존이고, 하느님 사랑의 증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인 천사뿐 아니라 눈에 보이는 천사들도 보내주십니다.


가족, 이웃, 친지, 그리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선한 영향력의 주인공들... 그런데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이들만 천사가 아닙니다.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 우리의 관심과 손길이 절실한 이들도 우리를 하느님 닮은 존재로 형성되어가도록 기회를 부여하는 천사들이지요.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마태 18,1)


그런데 제자들의 관심사는 여전히 크고 강하고 우월한 존재와 그런 자리에 쏠려 있습니다. 세속적 질서에 발을 파묻은 채 하늘 나라에 대해 이해하려니 자꾸 예수님 가르침과 엇나갑니다.


이에 예수님은 사랑으로 통치되는 하느님 현존 상태에서 누가 더 큰지에 대해 어린이를 들어 인내롭게 설명하십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마태 18.3).


우선 자기 안에서 하느님의 뜻과 합치되지 않는 부분을 돌이켜 하느님을 향하도록 돌려놓아야 합니다.


회개자는 옛 삶은 하느님 자비에, 미래는 하느님 섭리에 맡긴 채 현재를 철저히 의탁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보호자가 꼭 필요한 어린이처럼 말이죠.

"자신을 낮추는 이"(마태 18,4).


진정으로 부서지고 낮추인 영혼이 된다는 것은 인위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느님의 크신 자비와 죄인인 자신의 작음이 이루는 극적인 대비를 받아안고 자기 자리를 찾게 되는 질서입니다.


그런데 무능하고 약해서 누군가 들어올려 주지 않으면 낮은 곳에 자리할 수밖에 없는 어린이같은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크다니 하늘 나라에서의 크기는 곧 "작음"의 크기인가 봅니다.

"이 작은 이들"(마태 18,10).


이제 큰 사람에 관한 화제는 작은 이에 대한 관심으로 넘어갑니다.


설령 인간의 세속적 눈에 보잘것없는 이라도 그의 천사가 그와 하느님 곁을 오가며 그를 위해 애쓰고 있기에, 우리는 하느님 곁에서 그분 얼굴을 뵙고 있는 우리 각자의 수호천사를 통해 하느님의 시야 안에, 마음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 있는 겁니다.


크고 작음을 가늠할 필요없이, 감출 것 없이 아버지 품에 안긴 어린이처럼 말입니다.

인위적으로 무엇이 되려 하기보다 그런 회개자, 그런 어린이, 그런 작은 이, 그렇게 낮추어진 이를 바라보시는 주님의 눈길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그들은 하느님 자비와 사랑이 꼭 필요한 존재이기에 하느님께서 당신 눈동자처럼 보호하고 돌볼 수 밖에 없는 이들이니까요.

이것이 바로 하늘 나라에서 통용되는 도량형의 비밀입니다. 바로 하느님의 큰 사랑과 자비가 더 절실한 이들이 큰 사람이라는 것!


그러니 무엇을 망설이십니까? 자기 기만과 착각과 허세만 살짝 내려놓으면 우리는 이미 하늘 나라에서 충분히 "큰 사람"이 아닐까요?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