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내용은 다소 어둡습니다. 제1독서에서는 바빌론 유배에 대한 바룩 예언서 저자의 참회 기도가 들려 오고, 복음에서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애끓는 탄식이 들려옵니다.
"불행하여라"(루카 10,13).
오늘의 대목은 일흔두 제자의 파견 기사에 바로 이어서 나옵니다.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 이런저런 지침들을 당부하시면서 혹여 받아들여지지 않을 상황을 염두에 두어 대응책까지 일러주신 바 있지요(루카 10,,10-12). 이 말씀에 긴장했을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당신도 어느 고을들에서 배척당하셨다는 걸 솔직히 드러내십니다.
예수님의 기적에도 불구하고 회개를 거부한 고을의 이름들이 불리웁니다.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 안타깝게도 이 고을들은 예수님과 더 가깝고 친숙한 곳들입니다. 저주가 아니라 한탄과 탄식에 가까운 이 불행 선언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무기력, 나아가 하느님의 무기력을 만납니다.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루카 10,16).
복음 내용 앞부분의 2인칭 "너희"가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을 가리켰다면 뒷부분의 "너희"는 제자들을 향합니다. 용기를 주시려는 겁니다.
너희가 받는 환대는 내가 받는 것과 마찬가지고, 혹 너희가 배척을 받아도, 나와 나를 보내신 아버지를 배척하는 것이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움츠러들지도 말라고 격려하시지요. 파견된 이는 파견하신 분의 이름과 존재를 새기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주 우리 하느님께는 의로움이 있지만, 우리 얼굴에는 오늘 이처럼 부끄러움이 있을 뿐입니다"(바룩 1,15).
하느님의 의로움과 그 앞에 선 우리의 부끄러움. 이는 벗어버릴 수 없는 인간 실존의 모습일 겁니다.
아무리 하느님께서 당신 사랑을 옴팍 쏟아부은 선택된 백성이라도 스스로 거부하고 배척하고 외면하면 도리가 없지요. 하느님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제거해서라도 당신 말씀을 듣게 하시지는 않으십니다. 이 존중 역시 그분의 의로움이니까요.
바룩 예언서 저자는 유다의 패망과 바빌론 유배의 원인을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이라고 겸허히 고백합니다. 주님 앞에서 죄를 짓고, 거역하고, 말씀을 듣지 않은 죄입니다.
심지어 이집트 탈출 때 이집트에 내리신 재앙과 저주가 이번에는 고스란히 이스라엘에 내린 것이라고 하느님 백성의 역사를 성찰합니다.
핑게 없는 무덤이 없다는 옛말처럼 모든 흥망성쇠에는 원인이 존재하지요. 개인적으로,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닥쳐온 행, 불행의 실마리를 아프지만 정확히 성찰해낼 수 있다면 아무리 비참한 흑역사라도 디딤돌로 변모시킬 수 있습니다.
사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각자의 삶을 "하느님의 의로움과 인간의 부끄러움"이라는 말씀에 비추어 돌이켜 봅시다.
예수님과 가까웠던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처럼 각자 삶에 알알이 박힌 사랑의 기적들을 망각한 채 무심하고 미온적인 마음으로 회개를 마냥 미루고만 있지는 않은지요...
하느님을 알아갈수록 결국 우리는 이런 고백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 제 삶의 모든 좋은 것은 당신께서 주신 것이고 당신이 이루신 일입니다. 반면 제 삶의 모든 아픔과 고통과 실패는 제 탓입니다. 그러니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오늘 축일을 지내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회개 초기 하느님께서 자신의 길을 밝혀 주시기를 청하며 밤새 "하느님 의로우신 당신은 누구시며, 죄많은 저는 또 누구입니까?"를 되내며 기도하였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한마디로 회개의 삶이었다고 유언에서 고백하지요. 또 자신이 시작한 수도회의 첫번째 명칭을 "아시시의 회개자들"이라고 불렀답니다. 큰 회심은 큰 사랑을 낳습니다.
오늘 큰 회심과 큰 사랑으로 교회를 쇄신한 프란치스코 성인의 축일을 지내며, 우리도 하느님의 의로움과 우리의 부끄러움을 겸손되이 고백하는 큰 회심의 사람이 되도록 하느님께 자비를 청해주십사 성인께 전구합시다.
"성 프란치스코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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