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9.10.01.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dariaofs 2019. 10. 1. 04:52



예수님께 비장한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루카 9,51).


오늘 제1독서인 즈카르야 예언서는 이민족과 세계 만방이 하느님 현존을 기대하며 몰려올 영화로운 도성 예루살렘을 이야기하지만, 현재 예수님께 예루살렘은 "예언자의 죽음의 도성"(루카 13,33 참조)입니다.

"마음을 굳히셨다."


설령 예루살렘을 향하는 지금 이 길이 당장 수난과 죽음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해도, 예수님께서 번민과 고뇌를 딛고 아버지의 뜻만을 추구하리라는 굳은 결심을 세우신 순간은 참으로 결연합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루카 9,51).


이 냉대와 거부는 유다와 사마리아 사이에 형성된 해묵은 적대감과, 무시에 대한 반감에 기인합니다만, 다른 이유도 존재할 겁니다.

사실 한 존재가 큰 빛으로 들어갈 때 어둠의 힘도 여지없이 끼어듭니다.


그 결단의 파급 효과가 크고 은혜로울수록 끌어내리려는 힘도 적극적이 되지요.


아버지께 온전히 순종하려는 큰 뜻을 품고 한 걸음 나아가시는 순간, 언젠가 다가오겠지만 그게 당장인 줄은 몰랐던 거부와 배척이 유다와 사마리아의 역사적 관계성을 빌미로 실체를 드러낸 겁니다.


이것이 곧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려는 결심을 굳히신 순간 받으신 첫 번째 유혹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그분은 동요하지 않으십니다. 조금 앞당겨졌을 뿐 당신이 맞이하셔야 할 예언자의 길임을 잊지 않고 계시니까요.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루카 9,54)


천둥의 아들들(야고보와 요한)은 자기들이 엘리야라도 된 듯 여기는 걸까요? 만용도 이런 만용이 없습니다.


홀대받는 스승에 대해 그만큼 분하고 속상한 심정은 알겠으나 충성심이 과했지요. 악은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이들의 충성심과 애정을 통해 명예심을 부추기고, 상처입은 영광이 분노와 파괴로 이어지도록 방법을 슬쩍 제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루카 9,55).


예수님은 지금 철없는 제자들을 꾸짖으시는 행위를 통해 그들 안에서 피어오르는 악의 기운에게 철퇴를 가하시는 겁니다.


한없이 자애 넘치고 사랑 가득한 분이시지만, 제자들 안에 스며든 악의 기운을 감지하실 때면 가장 신뢰하는 제자에게도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마태 16,23)를 외치시는 분이니까요.


스승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라는 허울로 내뱉은 폭력적이고 무분별한 역성이 예수님을 끌어내리려는 두 번째 유혹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루카 9,56).


예수님은 당신에 대한 냉랭한 거부에도, 지나친 충성에도 휘둘리지 않으시고 꿋꿋이 당신의 길을 가십니다.


어느 편으로도 기울지 않는 힘은 자기애와 자기 영광에 함몰되지 않는 지혜에서 나옵니다. 또 당신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찾는 선택이었기에 이렇듯 so 쿨~하게 떠나신 것이지요.

"자, 가서 주님께 은총을 간청하고 만군의 주님을 찾자. 나도 가겠다."(즈카 8,21)


예루살렘을 향하는 한 성읍의 주민들이 다른 성읍에 가서 외칠 것입니다.


선하고 진실하고 아름다우신 영광의 주님께 함께 가자고 독려하는 이 목소리는 이미 수 세기 전 성읍마다 마을마다 울러퍼져야 했지요. 하지만 예수님 시대에 와서도 현실의 벽은 두껍기만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그들에게 보냈다"(사도 8,14).


훗날 예수님의 승천과 성령 강림 후, 필리포스의 전교로 시작된 사마리아의 복음화는 교회 역사 안에 성큼 들어와 자리를 잡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만난 즈카르야의 예언이 비로소 이루어지는 전기를 맞이한 것이지요.

"때가 차자"(루카 9,51).


때를 아는 이는 경솔히 분노하거나 앞질러 실망하지 않습니다. 적처럼 다가오는 이를 증오하지 않고 혀처럼 감겨드는 이를 편애하지 않으면서 그들을 움직이는 힘을 꿰뚫어 봅니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대하시는 "때"는 당신 십자가로 유다인과 이방인을 가르던 적개심과 차별을 없애버리실 진정한 "때"입니다.


그 "때"가 지금 여기서도 차오르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스며드는 차별과 적대감과 무시와 소외의 악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요...


제 분노를 충성심인 양 투사해 놓고는 "불을 내려 버릴까요?" 하며 있지도 않은 능력까지 동원해 어둠에 동조하고 있다면, 돌아서서 꾸짖으시는 예수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면 좋겠습니다.


무어라 하시고 어디를 향하실지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이 혼돈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