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4월 15일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dariaofs 2020. 4. 15. 06:09



오늘 미사의 독서 대목들은 매우 유명하고 감동적인 일화들입니다.

복음은 예수님 죽음과 시신 실종 후 엠마오로 되돌아가는 제자들 이야기입니다. 평소에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이 다가왔는데 오늘은 제자들의 행동이 부각되어 들어옵니다.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한 채 멈추어 섰다"(루카 24,17).

무너진 기대, 깨진 꿈으로 실망과 두려움에 차서 내려가는 귀향길에 웬 낯선 이가 가까이 다가와 함께 걷습니다.


그리고 무슨 "말"을 주고받느냐는 그의 질문에 제자들은 멈추어 서지요. 예루살렘에서 멀어지는 낙향의 발걸음을 "멈추고" 낙담과 절망으로 헛도는 말을 "멈춥니다." 이 "멈춤"에서 구원이 시작됩니다.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루카 24,27).

그리고 그들은 귀를 기울입니다. 듣습니다. "말씀"이신 분에게서 흘러나오는 생명을 흡수합니다. 후에 고백하지만, "그분이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그들의 마음이 타오릅니다"(루카 24,32 참조).


"멈춤"으로 부활하신 구원자께 자신들을 개방한 그들은 "들음"으로써 구원을 섭취합니다.

"그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하며 그분을 붙들었다"(루카 24,29).

그들이 적극적으로 주님을 붙듭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았네. 나 그이를 붙잡고 놓지 않았네"(아가 3,4).


찾아 헤매던 님을 만나, 그를 붙잡고 놓지 않는 아가의 여인이 떠오릅니다. 이 적극적 행동은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사랑의 의지입니다.

"멈추고", "들은" 그들은 이제 구원을 꼭 "붙듭니다." 말씀을 더 듣고 싶고 그분과 계속 함께 머물고 싶습니다. 아직 이성은 감지 못해도 사랑이 사랑을 알아본 것입니다. 사랑은 영원한 일치, 하나됨을 지향합니다.

제1독서는 베드로와 요한이 베푼 치유 이야기입니다.

"모태에서부터 불구자였던 사람"(사도 3,2)

오늘의 주인공은 태어나면서부터 단 한 번도 서거나 걷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는 "성전 문 곁"(사도 3,2)에서 구걸을 해 연명합니다. 그가 하느님께 다가갈 수 있는 곳은 딱 여기까지입니다.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러자 그가 즉시 발과 발목이 튼튼해져서 벌떡 일어나 걸었다"(사도 3,7).

그는 단순히 습관적으로 물질적 동냥을 바랐지만 베드로와 요한은 치유를 선사합니다. 걷기는커녕 일어서 본 적도 없던 그가 오른손을 잡아 끄는 베드로에게 몸을 맡깁니다.


가능할지 불가능할지 재고 따지고 할 것 없이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사도 3,6) 순식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들과 함께 성전에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하느님을 찬미하기도 하였다"(사도 3,8).

모태에서부터 불구자였던 그가 걷기 시작하면서 자기 발로 가장 먼저 향한 곳이 성전입니다. 그동안 그 언저리에서 사람들의 자비에 몸을 맡겼던 그가 이제 뚜벅뚜벅 제 발로 성전 안을 걸어 들어갑니다.


거리상으로 보면 그리 멀지 않지만 "성전 문 곁"과 "성전 안"은 엄청난 간극을 지닌 거리입니다. 걷고 뛰고 찬미하는 그에게서 기쁨과 행복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복음 속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간 제자들의 발길이 이렇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들은 말씀과 빵의 나눔을 통해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고"(루카 24,31) 다시 용기를 내어 발길을 되돌립니다. 이제 그들은 선포하고 나누며 힘차게 제자의 길을 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말씀과 성체로 우리와 함께하시지요. 그런데 구원을 위해서 우리가 호응하고 해야 할 몫이 분명히 있다는 걸 오늘의 말씀은 들려 줍니다.


멈추고 듣고 붙들고, 쳐다보고 내어맡기고 일어나 걷고 뛰고 하느님을 찬미하는 가운데 구원이 무르익어 갑니다.


완성을 향해 갑니다. 주님과 우리의 사랑은 성전 안 지성소가 상징하는 존재의 깊은 마음자리에서, 주님과의 영원한 일치로 완성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오늘 하루 "말"은 좀 줄이고 다가오시는 말씀을 기다립시다. 누구를 통해서건, 사건이나 기억을 통해서건 그분이 지나치시기 전에 멈추고, 듣고, 붙듭시다. 부활 체험은 나약한 죄인인 우리에게서도 이렇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