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의 말씀은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 10,30)라는 어제 복음의 마지막 문장을 부연하는 듯합니다.
요한 복음 10장의 후반부부터 12장의 뒷부분 사이에 유다인들의 반발과 라자로를 살리신 일화들이 들어 있지만 전혀 손색없이 자연스레 이어지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요한 12,45).
아버지와 예수님의 하나됨은 두 분의 무한한 겸손의 토대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느님은 세상에서 일하시되 당신을 드러내시지 않고 아들을 통해 뜻을 이루시지요. 또 아드님은 아버지의 일을 하시면서 당신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움직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당신이 각인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당신을 보는 것이 곧 아버지를 보는 것이라 하시며 온갖 선과 능력과 표징이 아버지의 것임을 강조하십니다.
"내가 하는 말은 아버지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하는 말이다"(요한 12,50).
예수님은 아버지의 말씀을 하십니다. 당신의 것을 섞지 않고 아버지의 목소리가 되기를 꺼리지 않으시지요. 사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이시니 예수님으로서는 말씀이신 당신의 존재와 정체성을 실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1독서 첫머리에서 밝히듯 이 말씀은 살아 계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면서 널리 퍼져 나갔다"(사도 12,24).
생명 있는 모든 것은 변합니다. 성장하고 쇠퇴하는 건 살아있다는 증거지요. 자란다는 건 자체의 생명력과 외부적 협력이 함께 움직인 결과입니다.
말씀의 생명력은 홀로 고립되어 계시지 않고 성령의 인도를 받은 사도들, 신도들과 함께 풍요로이 증폭되어 번져 나갑니다.
말씀이 널리 퍼져 나가는 과정 안에는 "예배와 단식"(사도 12,2)이나 "찬송"(화답송)만큼 "따로 세우고 떠나 보내는"(사도 12,2-3 참조) 도전을 공동체적으로 수용하는 개방성도 중요합니다. 그 모든 일 안에 "성령"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우리와 함께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시는 말씀이 마지막 날에 결정적인 힘을 드러내신다고 합니다.
"내가 한 바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할 것이다"(요한 12,48).
심판은 육체적 죽음 너머의 삶을 기대하는 인류에게 참으로 큰 도전입니다. 그런데 심판의 주체가 사랑이신 아버지가 아니고, 십자가 죽음으로 우리를 살리신 예수님이 아니라, 당신 입에서 발설된 '말씀'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온 생애를 걸쳐 사랑으로 전달하신 아버지의 말씀, 그분의 뜻은 우리 안에 남아 있습니다.
뇌리에 새겨져 있고 마음에 물들어 있지요. 어쩌면 우리 온 존재 안에는 우리가 의식하건 의식하지 못하건 주님의 말씀, 가르침과 사랑이 가득 차 있을지도 모릅니다.
성경과 교리는 물론 자연과 양심과 모든 선한 이웃들을 통해 전해진 하느님의 뜻이 차곡차곡 쌓여 우리 자신을 이룬 것이니까요.
사랑하는 벗님! 우리 각자는 아버지와 하나이신 예수님께서 투명하고 사심없이 전하시는 아버지의 뜻과 함께 자라서 오늘의 "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두려워하는 심판의 기준은 저마다 각자 안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온 세상을 휘돌아 자라고 퍼져 나가는 말씀께서 우리 각자 안에서도 작용하시니까요.
아버지와 하나이신 예수님, 바로 그 예수님과 내가 하나라는 믿음이 있다면 심판은 더 이상 우리를 두려움에 몰아넣지 않습니다. 사랑이신 분과 사랑으로 하나인 우리에게 심판은 그리던 님과의 해후이고 애쓴 보람이며 사랑의 보상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과 내가 하나가 될 수 있을까요? 말씀이신 예수님 안에서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가능하겠지요.
그 말씀이 우리를 드러나게 해주고 우리는 그 말씀으로 예수님을 드러낸다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 하나임의 신비를 체험하리라 믿습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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