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의 말씀에는 우리의 귀를 솔깃하게 해 주는 "기쁜 소식"(사도 13,32)이 들어 있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요한 14,2).
먹고 입는 일 만큼이나 거처도 인간 삶의 필수 요소입니다. 마음 편히 머무를 곳이 있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기도 하지요. 머리 둘 곳조차 없으셨던 예수님의 자유로운 가난의 경지에 오르기까지 우리는 몸과 마음을 안식할 둥지를 갈망하며 찾아다닙니다.
허락받은 생명이 소진되는 날까지 지상에서 나그네 생활을 해야 하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집" 이야기를 꺼내십니다. "아버지의 집"을 꼭 공간적으로 해석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버지의 집은 하느님 나라나 천국과 같이 아버지께서 현존하시는 곳이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또 아버지의 품이고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아버지 자신을 가리키기도 하지요.
거기에 우리를 위한 자리가 있다고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예수님께서 친히 그 자리를 마련해 주신다니 얼마나 행복합니까! 하느님 아버지 안에 있는 나의 자리, 나의 거처! 생각만 해도 기쁘고 편안하고 행복해지지 않습니까?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예수님은 아버지 집 안에 우리의 거처를 마련해 주시는 것으로도 모자라 당신 친히 아버지의 집까지 이르는 길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밟고 예수님을 거쳐야만 아버지의 집까지 가 닿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연결된 길이시고, 아버지를 설명하는 진리시며, 아버지의 생명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고 감지하고 알아갑니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은 하느님과 하나이시면서 인성을 취하신 예수님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제1독서에서는 사도 바오로의 설교가 계속됩니다.
"우리 선조들에게 하신 약속을,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어 그들의 후손인 우리에게 실현시켜 주셨습니다"(사도 13,32-33).
우리에게 파견되신 하느님의 말씀, 예수님께서는 죽으셨다가 부활하심으로써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하신 구원의 약속을 완성하십니다.
우리 구원에 대한 하느님의 갈망이 아들을 세상에 내주실만큼 간절했음을 알겠습니다. 어쩌면 그 절박함은 우리가 아버지 집에 머물고 싶어하고 아버지와 하나되고 싶어하는 갈망 이상일 겁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길 안에 있으면 족합니다.
길을 따라, 길을 밟고, 길이 나 있는 방향대로 길과 함께 나아가면 어느새 우리는 아버지 안에 있게 됩니다. 아버지는 우리 모두가 넉넉히 깃들고도 남을 깊고 거대한 품이십니다.
아버지께서 우리의 거처이시고, 우리 또한 그분의 거처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자신을 거처 삼으시도록 내어드리는 동시에, 우리도 아버지 안에 거처합니다. 이렇게 서로 안에 거하는 것은 일치와 하나됨의 신비입니다. 이 기쁜 소식을 벗님에게 전합니다.
이미 예수님은 벗님을 위해 아버지 안에 거처를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사후나 종말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벗님은 이미 아버지 안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일치의 기쁨 속에서 복된 하루 되시길 축원합니다.
우리의 영원한 거처요 품이 되어주시는 어머니 아버지를 기억하며, 이미 돌아가신 부모님들께는 아버지 품 안에서의 영원한 안식을, 살아계신 부모님들께는 이 기쁜 소식을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어버이날 축하드리며 감사의 절 올립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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