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3년 5월 2일 다해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dariaofs 2013. 5. 2. 11:47

 

                                                                                   (요한 15,9-11)

 

 

 

<사랑, 계명, 기쁨>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9-11)."

 

이 말씀의 핵심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켜라.'

('내 계명을 지키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계명'은 '서로 사랑하여라.' 라는 계명입니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 말을 '우리가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로 바꿔서 표현할 수도 있고,

'의무감이 아니라 사랑으로 계명을 지켜야 한다.'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원래 '사랑'이란 의무감이 아니라 '사랑으로' 실천하게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계명은 명령이 아니라 사실상 '당부'이고 '호소'입니다.

 

만일에 사랑 없이 의무감만으로 사랑을 실천한다면

그것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람끼리 사랑하는 일도 하기 싫으면 못합니다.

하느님(예수님)을 사랑하는 일도 하기 싫으면 못합니다.

사랑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해서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생활도 명령을 받았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지금 예수님의 말씀은

당신의 제자들을 극진히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시는 말씀인데,

마치 짝사랑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사실 예수님은 당신을 믿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짝사랑하신 분입니다.)

 

'계명'이라고 표현되어 있어서 '의무'와 연결하기가 쉬운데,

'의무'는 좋든 싫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하기 싫어도 억지로 해야 하는 의무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저절로 실천하게 되는 '기쁜 일'입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룻'이 좋은 예입니다.

'룻'은 다윗 왕의 증조할머니입니다.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는 아들이 죽고 며느리인 룻이 과부가 되었을 때,

룻에게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그때 룻은 나오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어머님을 두고 돌아가라고 저를 다그치지 마십시오.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어머님께서 숨을 거두시는 곳에서 저도 죽어 거기에 묻히렵니다.

주님께 맹세하건대

오직 죽음만이 저와 어머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습니다(룻 1,16-17)."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떠나라고 '명령'하는데, 며느리는 남겠다고 합니다.

룻의 말을 보면, 룻이 남겠다고 한 것은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시어머니를 정말로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나오미가 룻에게 떠나라고 말한 것도 룻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십계명을 실천하는 일은

불효자식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의무가 되겠지만,

정말로 부모를 사랑하는 효자들은 그것을 계명으로 의식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당부 말씀대로 서로 사랑하게 되면,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물게 되고,

예수님의 기쁨이 우리 안에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9절의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라는 말씀은 명령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호소'이고,

10절의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는 약속입니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물게 된다는 말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고,

하느님과 예수님 사이의 사랑에 동참하게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머물다.' 라는 말은 '일치'를 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물게 된다는 것은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과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일치되고 완성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다시

하느님과 예수님 사이의 '완전한 사랑'에 동참하는 일이 됩니다.

 

하느님과 예수님 사이의 완전한 사랑에 동참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고,

하느님과 사랑을 나누면서 함께 영원히 살게 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기쁨이 우리 안에서 충만하게 된다는 말도 같은 뜻입니다.

 

이 '기쁨'은 하느님 나라에서만 얻을 수 있는

영원한 생명과 행복과 평화를 누릴 때의 기쁨을 뜻합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