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행복의 조건을 제시하십니다.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마태 13,16).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그들이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한 거라고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소위 말하는 세상의 똑똑하고 지혜롭고 힘과 재물까지 거머쥔 유력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저 예수님을 추종해 삶의 기반까지 무모하게 던져버린 단순하고 소박한 "철부지"(복음 환호송)들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보고 듣는 능력은 어디에서 올까요?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마태 13,12).
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조건은 "허락된 것"입니다. 제자들 스스로 만들거나 꾸며낼 수 없고, 오로지 아버지께서 주시는 이만 받아 누릴 수 있는 선물인 것이지요. 허락의 주체는 아버지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공정하시지 않은 걸까요? 누구는 보고 듣게 해 주시고 누구에게는 그럴 능력을 주시지 않으니까요. 모두 하늘 나라의 신비를 보고 들어 깨닫게 해 주시면 더 좋을 텐데 말입니다.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마태 13,15).
안타깝지만,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그들의 무능은 스스로 자초한 것입니다. 보고 듣는 감각을 지배하는 그들의 마음과 정신이 하느님과 같은 방향으로 열려 있지 않기 때문이지요. 하느님 뜻보다 더 중요한, 다른 무엇을 지향하고 있으니까요.
제1독서에서 예레미야는 하느님 백성이 저지른 두 가지 악행을 고발합니다.
"그들은 생수의 원천인 나를 저버렸고 제 자신을 위해 저수 동굴을, 물이 고이지도 못하는, 갈라진 저수 동굴을 팠다"(예레 2,13).
백성의 첫째 악행은 하느님을 저버린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느님은 종종 생수의 원천, 샘으로 불리우시지요. 그분이 생명의 근원이시고 주인이심을 드러내는 표현들입니다. 그러니 생수의 원천을 저버리는 것은 생명을 저버리는 행위입니다. 헤어질 수 없고 분리될 수 없으며 갈라져서는 안 되는 관계의 훼손이지요.
백성의 두번째 악행은 제 자신을 위해 다른 물길을 판 것입니다. 하느님을 저버리고 다른 우상을 하느님 삼아 만든 것이지요. 그런데 그 저수 동굴이란 것이 갈라져 물도 고이지 못한다고 하니 전혀 쓸모 없는 흉물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제 자신을 위해" 우상을 섬깁니다. 하느님이 허락하시는 축복을 갈망하고 기다리기보다, 자기가 원하는 축복을 줄 우상을 찾고 세우고 위합니다. 하느님 섬기기를 그치고 자기를 섬기기 시작하면서 죄는 심화되고 하느님과 백성의 관계는 얼그러지지요. 그들 마음이 서서히 닫혀가니, 귀도 막히고 눈도 감깁니다. 이렇게 그들은 하느님과 다른 곳을 향하는 이방인이 되어갑니다.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행복합니다! 주님을 믿고 사랑하고 섬기는 길이 세속적 부와 성공과 명예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묵묵히 신의를 다해 주님을 따르는 철부지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행복합니다. 호의와 헌신이 오가는 소소한 사랑의 순간에 눈물이 핑~돌 줄 알고, 숨은 희생에 가슴 찡~ 할 줄도 알며, 스치듯 지나가는 주님 입김에 전율하는 영혼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행복합니다. 여전히 가난하고 부족하지만, 온 세상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는 주님 현존의 자취를 감지할 줄 알고, 그로 인해 감동하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철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행복한 철부지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온 세상에 이 행복이 널리널리 전파되면 참 좋겠습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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