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신앙 여정에서 하느님의 주도권을 강조하십니다.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마태 20,21)
두 제자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아들들의 자리 청탁을 합니다. 메시아 시대를 현세적 부와 명예와 권력의 기회로 오해하고 있기에 벌어진 일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이 신의 축복과 현세적 영광을 동일시 내지는 같은 편에 세워놓았지요. 아예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들어맞는다고도 할 수 없는데 말입니다. 그걸 바라는 인류가 그렇게 믿는 편을 택해 왔을 뿐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마태 20,26).
세상은 현세적 힘으로 군림하고 세도 부리는 갑질을 당연시하고 용인해왔지요. 그러니 섬김과 낮춤, 비움과 희생을 권고하는 예수님 가르침은 당시로선 충격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어쩌면 아직까지도 여전히 낯설고 불편한 진실이지요.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들아가는 것이다"(마태 20,23).
게다가 예수님은 당신의 몫과 아버지의 권한을 명확히 밝히십니다. 성부와 성자가 한분 하느님이시기는 하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뽑아 세우고 가르쳐 제자로 양성하는 건 당신의 몫이고, 태초에 각자에게 소명과 은사를 부여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라는 뜻 같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각 사람 안에 빚어넣으신 모상성이 제 꼴을 갖추어 활짝 피어나 완성되도록 이끄는 스승이십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우리 존재의 핵심을 이루는 힘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2코린 4,7).
우리는 질그릇에 불과합니다. 투박하고 잘 깨지는, 값싸고 흔한 그릇 말입니다. 살림살이 중에서는 귀중품처럼 가치로운 것보다는 덜 중한 것들이 담기지요. 겉보기에도 그다지 값어치가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2코린 4,7).
그런데 사람들과는 달리 하느님께서는 질그릇에 당신의 엄청난 힘을 담으십니다. 더 우아하고 유려한 고급 도자기를 고르지 않으시고 못나고 질박한 그릇에 당신 친히 기꺼이 담기시는 겁니다.
낡고 깨지고 흠도 많은 질그릇에 불과한 우리 존재를 지탱하는 힘이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우리 안에 그분이 있어 우리는 억눌리거나 절망하거나 버림받거나 멸망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지니고 살지만 죽지 않지요.
그러니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는 안 되지요. 우리에게 당신을 담아 주신 분께서 친히 공과 덕을 이루시고 당신 모상성이 깨어나 완성되도록 이끄시기 때문입니다. 질그릇인 우리가 하는 협력이란 참 보잘것없고 미소할 뿐이지요.
"섬기는 사람"(마태 20,26)
"종"(마태 20,27)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스스로 섬기는 사람, 종이 되셨는데, 질그릇에 불과한 우리가 무엇이라고 형제와 이웃 위에 군림할 야망에 들뜨겠습니까! 우리 안의 하느님께서 우리를 지탱하고 키우셨으니 우리가 자랑할 건 사실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들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자리는 아버지께서 정하십니다. 현세에서 누리는 부와 권력, 신분의 순서와는 다른 구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서야 제도와 신분이 자리를 보장하지만, 예수님의 바로 곁자리, 가장 가깝고도 친밀한 자리는 그 제도와 신분마저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요? 아마도 인간인 우리는 겉을 보지만 하느님은 속을 보시니까 그럴 것 같습니다. 인간은 질그릇을 보니까 대수롭지 않게 뒤로 밀어낼 수 있고, 하느님은 잘 비워낸 질그릇 안에 담긴 당신을 보시니 서로를 끌어당길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요...
예수님의 곁자리는 하느님께서 정하신다는 말씀이 그날 그 어머니와 두 제자에게 희망이 되었을까요, 실망을 안겼을까요? 마찬가지로 이 말씀이 내게 희망을 줍니까, 아니면 근심이 됩니까?
사랑하는 벗님! 끊이지 않고 다가오는 세상 고통과 시련 중에서도 늘 말씀에 머물러 주님을 담고 사는 우리는 이미 예수님의 곁자리를 차지한 이들입니다. 어쩌면 벌써 그분과 하나를 이루어 살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니 오늘도 힘내어 어둠을 떨쳐버리고 주님께 머무릅시다 보물을 담고 있는 한, 질그릇이어도 좋고 깨진 그릇이어도 괜찮답니다. 주님이 귀하게 여기시는 질그릇인 벗님을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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