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하늘 나라가 확장되는 조건을 알려 주십니다.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렸다"(마태 13,31).
겨자씨는 아주 작은 씨앗이지만 자라면 새들이 깃들일 정도의 크기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겨자씨가 그렇게 성장하려면 우선 밭에 뿌려져야 하지요.
흙과 수분과 양분이 겨자씨를 감싸고 품습니다. 씨는 제 몸에 침투하는 낯선 힘들을 받아들여 서서히 제 형체를 잃고 썩어가지요. 거기서 비로소 싹이 움트고 뿌리도 나옵니다. 흙을 딛고 하늘을 향해 줄기를 밀어올릴 태세를 갖추는 것이지요.
"하늘 나라는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마태 13,33).
누룩은 물질을 발효시켜 부풀게 합니다. 밀가루처럼 적당한 재료와 수분, 온도를 만나면 훨씬 부드럽고 풍성한 음식으로 변모시키지요.
예수님께서 하늘 나라를 비유하신 겨자씨와 누룩은 성장과 확대, 변모와 기여라는 특징을 지닙니다. 한눈에도 작고 보잘것없는 물질이지만 적합한 환경과 만나면 제법 영향력을 미치는 존재로 탈바꿈합니다. 씨가 흙에, 누룩이 밀가루에 뒤섞여 하나가 될 때 일어나는 작지만 의미있는 기적들일 겁니다.
제1독서에서 주님은 유다 백성을 아마포 띠로 빗대어 꾸짖으십니다.
"아마포 띠를 사 허리에 두르고 물에 담그지 마라"(예레 13,1).
"바위 틈새에 숨겨 두어라"(예레 13,4).
"띠를 가져오너라"(예레 13,6).
주님께서 아마포로 만든 띠를 특정해, 세 차례에 걸쳐 아주 구체적으로 예레미야에게 지시하십니다. 아마포는 매우 값비싼 직물로 귀하게 취급되는 재료입니다. 띠는 옷깃을 여미는 도구로 사람의 허리에 붙어 있을 때 제 역할을 하지요. 짝을 잃고 굴러다니는 띠는 아무렇게나 쓰이기야 하겠지만 잘 어울리는 옷에 붙어 있을 때처럼 제 가치를 발휘하긴 어렵겠지요.
"나도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그처럼 썩혀 버리겠다"(예레 13,9).
사람 허리에 둘렀다가 강가 바위 틈새 흙에 묻혔던 띠는 곧 상하고 맙니다. 아마라는 직물이 아주 순수한 고급 천연재료라 더 쉽게 상하기도 했겠지요. 그처럼 "썩어서 아무짝에도 쓸모없게"(예레 13,7) 된 아마포는 하느님을 떠나 우상숭배에 몸을 맡긴 유다 백성의 가까운 미래가 될 것입니다.
아마포 띠가 사람 허리에 둘러져 있을 때는 기능적으로도 심미적으로도 충분히 제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꼭 붙어 있을 때도 마찬가지지요. 만일 아마포 띠가 따로 분리되어 얼토당토 않은 곳에 있게 되면 가치도 떨어질 뿐만 아니라 꼭 있어야 되는지 존립 여부까지 불투명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곁에 있으라고 하시는 이유는 "그들이 당신 백성이 되어 명성과 칭송과 영광을 얻게 하려"(예레 13,11 참조)는 것입니다. 당신을 위해서 아니라 오로지 백성을 위해서인 것이지요. 그런 줄도 모르고 일탈을 꿈꾸는 백성이 주님은 얼마나 안타까우실까요.
우리는 이미 영혼에 하늘 나라를 품은 겨자씨나 누룩과 같은 존재입니다. 씨가 땅에 묻히듯, 누룩이 밀가루를 만나듯, 우리가 주님 옆구리에 딱 붙어 있을 때 하늘 나라의 생장 조건이 갖춰지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면 하늘 나라를 이루지만 우상에 한눈 팔려 주님에게서 떨어져 나가면 썩은 아마포 띠처럼 가련한 신세가 되고 말겠지요.
주님의 신부인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가 주님 곁에 머무를 때 지켜지고 발휘됩니다. 우리가 품은 하늘 나라의 씨앗이 모든 피조물이 깃들 큰 나무로 성장하는 길도 여기에 있지요.
사랑하는 벗님! 우리는 이미 하늘 나라를 품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씨앗이 더 넓고 크고 깊게 확장되어 이 세상 곳곳에 하늘 나라가 완성되길 바라시지요. 그러니 우리, 주님 허리에 꼭 붙어 있읍시다. 절대 그분을 떠나지 말고 그분과 한몸처럼 살아갑시다.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가 곧 하늘 나라입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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