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말씀의 씨앗을 품는 우리 마음 밭을 돌보라고 이끕니다.
제1독서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배반에도 불구하고 그들과의 관계를 회복하시려는 하느님의 성실한 사랑이 돋보입니다.
"내 마음에 드는 목자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너희를 지식과 슬기로 돌볼 것이다"(예레 3,15).
주님은 우상 숭배와 유배로 흩어진 이들을 다시 모아들이시고 그들에게서 다시 하느님 백성의 정신을 일으킬 목자를 보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목자는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나 그들을 실질적으로 이끌 임금, 예언자이기도 하고, 또 혼을 불어넣는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더 이상 자신들의 악한 마음을 고집스럽게 따르지 않을 것이다"(예레 3,17).
이스라엘 백성은 지식과 슬기로 자신들을 돌보는 목자와 매일 접하는 말씀의 도움으로 다시 주님께 돌아와 신의를 다해 그분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려면 백성들 편에서 무엇보다 먼저 "악한 마음"을 버려야 하지요.
"악한 마음을 고집스레 따름"은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는 지름길입니다. 말씀의 씨앗이 심겨 스며들 수 없는 냉랭하고 척박한 박토와도 같지요. 말씀을 거부하는 마음의 상태와 연결됩니다.
"길, 돌밭, 가시덤불"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셋 다 말씀의 씨앗을 제대로 품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무수한 세상 욕망의 스침과 진동으로 길바닥처럼 다져졌거나, 이기적 자아가 돌처럼 뭉쳐 굳어졌거나,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무성하게 번져 영혼을 칭칭 감고 있는 땅에는 말씀이 스며들 틈이 없습니다. 이런 마음의 악한 상태를 고집스럽게 유지하는 것이 곧 적극적으로 악을 고수하는 죄일 것입니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마태 13,23).
좋은 땅은 말씀을 품어 썩히고 싹으로 밀어올리는 힘이 있습니다. 말씀하시는 분 앞에서 경청하고 몰입하며 머무르는 상태지요. 열매는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맺히는 선물입니다.
악은 우리 주변을 맴돌며 거처를 찾습니다. 부족하고 나약한 우리는 쉽사리, 게다가 번번이 걸려넘어지기 일쑤지요. 어느 추락은 선택적이기도 하지만 어느 실패는 불가항력적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만큼 약하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우리가 주님과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무수한 죄악이 끈질기게 우리에게 달라붙어도 "자신들의 악한 마음을 고집스레 따르지 않는 것"(예레 3,17)에서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습니다.
다가오시는 말씀 앞에서 건조해지고 냉랭해진다면, 불편함과 거부감이 든다면, 못 들은 척 건너뛰고 싶다면, 다시 한 번 힘을 내어 오히려 그 말씀을 품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대단치 않아 보여도 이로써 악에 고착하려는 고집이 순간 힘을 잃지요. 악에게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 잔뜩 힘이 들어간 고집에 피식~ 하고 바람을 빼는 것, 이는 좋은 땅이 되려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나약하고 부족하지만, 주님을 품고, 말씀을 품고, 세상을 품는 좋은 땅이 되도록 힘껏 애써 봅시다. 아무리 척박하게 보이는 땅이라도 돌을 골라내고 거름과 퇴비를 주고 가꾸다보면 좋은 땅이 될 수 있답니다. 사실 하느님 모상인 우리는 원래 좋은 땅이었고, 지금도 부단히 그 원초적 풍요와 비옥함을 회복해가는 중이랍니다. 이를 믿고 희망하며 나아가는 벗님을 응원하고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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