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에게 하늘 나라를 엿보게 해 주십니다. 사실 성경에서 하늘 나라는 공간적 개념이라기보다 하느님과 그분 주권이 미치는 상태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마태 13,44)
모두가 소유하길 바라는 것이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여 있으면 너도 나도 달려가 취하려 할텐데, "하늘 나라"라는 보물은 숨겨져 있다고 하십니다. 보물이라는 것을 알고 찾아 얻으려는 이에게는 자신을 드러내고, 보물인 줄도 모르고 관심조차 없는 이에게는 영영 숨어 있는 것이 하늘 나라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하느님을 찾는 이들과 하느님을 찾지 않는 이들로 나뉩니다. 물론 그 안에도 열성과 지향에 따라 무수한 층위가 존재하겠지요. 가령 하느님을 찾는 이들 안에는 열렬한 사랑꾼도 있지만 지적 탐구를 위해 신학을 하는 이도 있고 도덕적 의무를 이행하는 정도로 하느님 이름을 취하는 이도 있을 겁니다.
반면 하느님을 찾지 않는 이들 안에는 하느님 현존을 불신하고 거부하는 이부터 적극적으로 공격하고 대항하는 자, 그저 무관심하거나 무용하게 여겨 외면하는 부류까지 다양하겠지요 . 그러니 하늘 나라는 숨겨져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가치를 아는 이의 눈에만 드러나는 신비니까요.
하늘 나라의 가치를 아는 눈, 그 시력이 곧 지혜입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에서 솔로몬이 주님께 청한 바지요.
"듣는 마음을 주시어 ...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1열왕 3,9).
대개의 사람이 추구하는 장수나 부, 복수와 권력 쟁취가 아닌 지혜를 청한 솔로몬에게 주님께서는 크게 탄복하시며 청하지 않은 것까지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지요(1열왕 3,13 참조). 지혜는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축복입니다. 가장 귀하고 소중한 것을 추구하는 "지혜"를 얻은 이는 모든 것을 얻은 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마태 13,45).
예수님은 또 하늘 나라가 상인과 같다고 하십니다. 상인은 좋은 물건을 구해서 좋은 가격에 팔아 이문을 남기는 사람이니, 물건을 보는 안목과 기준이 남다르겠지요. 알아보는 눈이 있는 이가 골랐으니 일단 가치는 보장된 겁니다.
상인은 값진 진주를 발견하면 가진 걸 모두 처분해 그것을 삽니다. 찾아다니고, 발견하고, 주저없이 처분하고, 선택하고, 소유하는 역동적 추진력이 느껴집니다.
바로 하느님(하늘 나라)의 모습이 그러하겠지요. "우리 각자"라는 값진 진주를 발견한 하느님께서 망설임 없이 가진 것을 처분해 우리를 사셨습니다. 이를 속량이라고 하지요. 하느님은 당신 생명으로 우리의 값을 치르고 우리를 얻어내신 분입니다. 그러니 하늘 나라는 이미 우리를 소유했습니다. 우리 역시 하늘 나라를 소유했고요.
"하늘 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마태 13,47).
그런데 하늘 나라 그물 안에는 아직 "좋은 것들"과 "나쁜 것들"이 혼재해 있습니다. 밀밭에서 함께 자라는 가라지와도 같지요. 가라지를 추수 때까지 그냥 내버려두듯이, 그물 속 내용물의 선별 작업도 "세상 종말"까지 유예될 것입니다.
힘들지만 그때까지 "가라지"나 "나쁜 것들"을 인내하고 기다려야 하는 이유를 제2독서에서는 이렇게 밝힙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
당장은 양분을 갈취하고 성장을 저해하며 생명력을 빼앗는 듯 보이더라도, 하느님의 큰 그림 안에서는 선을 향해 서로서로 작용하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마지막 날까지 아무도 끝을 모릅니다. 오직 주님만 아시지요. 그러니 끝날 때까지는 아직 끝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벗님! 하느님의 더 큰 선, 더 큰 영광을 위해 묵묵히, 인내로이 이 지상의 순례길을 견디며 나아갈 수 있는 지혜와 힘을 청합시다. 아직 많은 것이 불완전하고 고통스럽지만, 하늘 나라를 찾는 지혜 덕분에 우리는 이미 하늘 나라를 소유했고, 하느님도 진주를 알아보는 사랑의 혜안으로 우리를 소유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미 하늘의 시민입니다(필리 3,20 참조). 하늘의 시민인 벗님을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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