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7월 29일 성녀 마르타 기념일

dariaofs 2020. 7. 29. 08:17

오늘 미사는 예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었던 베타니아의 삼남매 중 마르타 성녀를 기념합니다. 미사의 말씀을 통해 마르타의 매력에 푹 빠져봅시다.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요한 11,20)...

마르타는 환대의 아이콘입니다. 예수님은 종종 마르타의 집에 들러 함께 시간을 보내며 지친 여정을 잠시 뒤로 하고 쉬셨던 것 같습니다. 초대하고 맞이하고 대접하고 불편함을 살피고 섬기는 마르타는 행동하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요한 11,2).

오빠를 병으로 잃어가는 동안 마르타가 얼마나 예수님을 기다렸을지 짐작이 갑니다. 예수님만 곁에 계시면 라자로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렇지만 속절없이 오빠를 잃고 나흘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그녀는 그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예수님께 완곡하면서도 강력히 자신의 바람을 표현합니다. 그녀에게는 예수님만이 오빠를 죽음에서 되돌려 세울 수 있는 분이니까요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예수님께 주저하지 않고, 거침없이, 확고히 고백합니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6)

마르타는 부활 신앙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마르타에게 예수님께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으십니다. 네가 알고 희망하는 바를 믿느냐고요. 사실 머리로 알고 또 요행처럼 바라기도 하지만, 진짜로 진짜로 믿고 있지는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요한 11,27).

마르타의 입에서 어느 학자나 영성가 못지않은 신앙 고백이 튀어나옵니다. 구원 역사의 핵심을 찌르는 그리스도론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내용이지요.

"믿습니다!"

이로써 마르타의 앎과 희망은 믿음으로 끌어올려집니다. 믿음은 지식이나 감성을 넘어서는 신비의 관문입니다. 고통의 시간을 지낸 마르타의 영혼은 앎과 희망과 믿음에 예수님 향한 사랑까지 더하여 완성되어 갑니다.

제1독서는 온통 사랑 이야기입니다. "사랑"이란 단어가 무려 열여덟 번이나 반복되고 있지요.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1요한 4,16).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하느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또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지요. 사랑에서 나온 우리는 사랑에 싸여 살다가 사랑으로 돌아갑니다. 그 과정 안에 사랑 아닌 것들이 가라지처럼 집요하게 끼어들어 우리를 끌어내리지만, 그래도 사랑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사랑이신 분의 사랑이니, 사랑 쪽으로 기우는 것이 본성적으로 가장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마르타는 마음 속 열정을 행동하고 말하고 표현하는 사랑입니다. 시원시원하게,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솔직하고 개방적이며 단순하고 순박한, 사랑의 표현가이자 사랑의 활동가라 할 수 있지요.

사실 깊고 뜨거운 사랑의 관상가 마리아의 그늘에 잠시 가려지긴 하지만, 그마저도 개의치 않고 팔을 걷어부치며 사랑하는 일에 용감무쌍히 뛰어드는, 예수님의 매력 만점 친구지요.

사랑하는 벗님! 마르타 성녀를 기리는 오늘, 우리도 그 사랑과 믿음을 닮을 수 있기를 청해 봅니다. 언제나 두 팔을 활짝 펼쳐, 지치신 예수님을 밝고 힘차게 맞아들였던 마르타처럼 용기 내어 사랑의 문을 열어 젖힙시다. 때로는 마르타처럼 행동하는 사랑으로, 때로는 마리아처럼 머무르는 사랑으로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는 더 친밀해지고 깊어지리라 믿습니다.

베타니아의 마르타,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오상성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