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의 운명을 보여 줍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힘을 얻었을까?"(마태 13,54)
예수님 고향 사람들은 그분 모습에 의아해합니다. 자기들이 아는 출신과 계급이 지금 보이는 능력과 연결되지 않나 봅니다. 관건은 "어디서"입니다. 그래서 현재 그분에게서 드러나는 하느님 현존의 영광이 아니라 다만 가르침의 지혜, 기적의 힘이 흘러나오는 출처가 궁금할 뿐이지요.
"어디서"
하느님을 경외하고 율법을 가까이하는 유다인이라면 예언자의 입과 행동을 통해 전달되는 모든 것이 하느님에게서 기인함을 모르지 않습니다. 예언자는 말, 행동뿐 아니라 인생 자체를 통해서도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도구니까요.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마태 13,57).
하지만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이시며 그분께서 누구를 대변하시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신비에는 눈을 감고 그저 자기들이 아는 세속적 계보에 매달릴 뿐이지요. 그런 폐쇄적 상태에서는 차라리 거짓 예언자의 달콤한 감언이설이 달갑습니다.
"내가 너더러 그들에게 전하라고 명령한 모든 말을 한마디도 빼놓지 말고 전하여라"(예레 26,2).
이것이 예언자의 기본 수칙입니다. 예언자도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지만 자신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 뜻을 편집하거나 재단할 수 없습니다. 한마디도 더하거나 빼거나 돌려말하거나 과장 왜곡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그저 하느님 말씀을 전달하는 투명한 통로여야 합니다.
"너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예레 26,8).
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합니다. 혹독하다 못해 참혹한 지경에 이르기도 하지요. 예언자가 백성을 위해 전달한 하느님 말씀이지만, 그 말씀이 자기 이익에 반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진위 여부와 상관 없이 예언자를 궁지에 몰아넣습니다. 그의 입을 막는다고 하느님 뜻이 달라지지 않더라도 일단 그를 공격합니다. 이를 모르시지 않는 하느님께서 왜 예언자들을 계속해서 위험 한가운데로 보내시는 걸까요?
"그들이 이 말을 듣고서 저마다 제 악한 길에서 돌아설지도 모른다"(예레 26,3).
이것이 하느님의 바람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분도 요행을 바라시는 걸까요? 번번이 틀려도 번번이 희망을 돌이키는 모래바람 같은 기대에 불과한데 말이지요.
하느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언자를 보내고 또 보내십니다. 어느새 예루살렘은 예언자에게 죽음의 도시가 되어버리지요(루카 13,33 참조). 그래도 하느님은 지치지 않으십니다. 결국 당신 아드님까지 인간 손에 넘기셨지요. 하느님은 인간의 악함을 모르지 않으시지만, 사랑 때문에 눈먼 그분은 그 사랑을 멈출 수 없으십니다.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마태 13,58)
결국 인간 구원의 책임은 인간에게 돌아갑니다. 믿지 않는 이에게는 지혜도 기적도 영향을 미칠 수 없으니까요. 예언자는 인간에게 신뢰받지 못하고 믿음을 주지 못한 채 변방으로 밀려나 죽음을 당할 겁니다. 하지만 예언자의 죽음이 하느님 말씀의 죽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하느님은 결코 인간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니까요.
"주님의 말씀은 영원하시다. 바로 이 말씀이 너희에게 전해진 복음이다"(복음 환호송).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신뢰는 우리의 불신보다 큽니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르지요. 그분 말씀은 누구를 통해서든 어떤 과정을 통해서든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믿기에 굼뜨고 더디고 우매한 우리에게 말씀과 사람과 사건으로 인내로이 다가오시는 그분 앞에 이제는 겸손히 마음을 열어야 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세상을 가득 메운 소음 속에서 주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따르는 지혜를 청하며 오늘 하루도 말씀과 함께 걸어가기를 기도합니다.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Dedication to Jesus
Lord Jesus Christ,
take all my freedom, my memory,
my understanding, and my will.
All that I have and cherish you have given me.
I surrender it all to be guided by your will.
Your grace and your love and wealth are enough for me.
Give me these, Lord Jesus,
and I ask for nothing more. Amen.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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