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10월 26일 연중 제30주간 월요일

dariaofs 2020. 10. 26. 05:16

오늘 미사의 말씀은 안식일의 의미를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를 보시고 가까이 부르시어"(루카 13,12)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열여덟 해나 허리가 굽은 채 병마에 시달린 여인을 보십니다. 고통스런 몸으로 안식일 규정을 지키기 위해 회당까지 온 그 여인이 예수님 눈에 곧바로 뜨인 것이지요. 세속인의 눈은 호사스럽게 겉꾸민 모습에 끌리기 쉽지만, 예수님 시선은 이처럼 고통 중에 있는 하느님 자녀에게 먼저 가닿습니다.

"여인아,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루카 13,12)

안식일에 치유 기적을 일으키면 고발하려고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벼르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예수님은 개의치 않으십니다. 열여덟 해나 아팠는데 하루이틀쯤 더 기다린다고 무슨 큰일 나겠냐고 생각하는 적대자들 틈에서 예수님은 하루라도 빨리, 아니 한시가 급하게 그녀를 "사탄"의 억압에서 구해주고 싶으십니다.

"그러자 그 여자가 즉시 똑바로 일어서서 하느님을 찬양하였다."(루카 13,13)

치유가 일어난 찰나, 그녀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즉시"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성해진 몸에 대한 확인이나 이웃과 나누는 기쁨보다 하느님을 먼저 찾습니다. 자동적으로, 그야말로 무조건반사처럼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습입니다. 비록 그처럼 고통스런 육신에 오래 갇혀 살았지만, 평소에 얼마나 진실되게 하느님 안에서 감사와 의탁의 삶을 살아왔는지 알 수 있을 듯합니다.

"안식일일지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루카 13,16)

분개하는 회당장에게 예수님께서 일침을 놓으십니다. "안식일일지라도"라고 하셨지만 마음속으로는 "안식일이니까 더욱"이라고 하셨을 것 같습니다. 사실 그녀는 오늘 쉼과 회복, 해방과 자유의 날인 안식일의 의미를 더욱 충만하게 체험한 것이지요. 안식일이 이윤을 추구하는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오로지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그분을 경외하고 섬기는 날이니만큼, 하느님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드리는 자체가 안식일을 더 충만히 의미있게 보내는 것입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의 자녀가 된 에페소 신자들에게 "자녀다움"을 권유합니다.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에페 5,1)

자녀된 이들이 아버지를 본받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라면 사랑과 자비의 모습을 닮아가도록 초대받은 것이지요. 우리는 인간으로 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사셨던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을 보고 그분을 닮아가려 애씁니다. 사랑이신 그분을 닮아 점점 사랑의 존재로 무르익어가는 삶. 이것이 우리의 꿈이지요.

"여러분은 감사의 말만 해야 합니다."(에페 5,4)

조금만 의식해도 우리가 하루에 얼마나 많은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지요. 말의 내용에 있어서는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일이나 업무에 대한 말을 제외하고, 불평, 험담, 원망, 후회, 질책 등의 부정적 언사가 감사, 찬양, 축복, 격려, 위로 등의 말보다 많을 수도 있습니다.

"감사의 말만" 하라는 사도의 권고는 입으로 발설되는 소리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부터, 영혼의 본류에서부터 감사가 새어져 나와야 한다는 뜻입니다. 립서비스처럼 입으로만 던지는 감사의 말은 반복될수록 공허하지만, 마음 안에서 우러나는 감사는 말하는 이와 듣는 이 모두를 하느님의 마음 가까이로 데려갑니다. 진정한 감사가 몸과 마음, 영혼에 진하게 배인 사람은 은총의 순간에 즉각적으로 하느님과 연결됩니다. 치유의 순간에 하느님을 찬양한 오늘 복음 속 여인처럼 말이지요.

사랑하는 벗님! 오늘 하루 우리가 하는 말에 감사와 찬양, 격려와 위로, 축복을 담아봅시다. 이처럼 진실되고 선하며 아름다운 말들이 상대방에게 회복과 해방의 선물이 될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매일 매순간 안식일의 의미를 충만히 채워가며 살아갈 수 있답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