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10월 23일 연중 제29주간 금요일

dariaofs 2020. 10. 23. 06:00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가 어느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물으십니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루카 12,56)

질문 안에는 질문자의 의도와 바람이 들어 있기 마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속의 사정에는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면서 정작 그 안에서 움직이는 하느님의 뜻에는 눈을 감아버린 이 시대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계십니다.

"땅과 하늘의 징조"가 자연 현상처럼 외부적으로 명백히 보여지는 추이를 가리킨다면, 그에 대비되는 "이 시대"는 그런 현상들 밑으로 유유히 흐르는 하느님의 섭리일 겁니다. 전자는 육신의 눈에 비치는 사실이고 후자는 신앙의 눈에 보여지는 진실입니다.

그저 보여지는 현상에 기대어 제 힘만 믿으며 살아가는 이는 그 너머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의 희로애락은 손에 쥔 권력이나 쌓이는 재산, 남 보기 그럴듯한 인맥에 쉽게 좌지우지 됩니다. 그들이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 이유는 경박한 이기주의와 탐욕이 옳음도 진실도 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부르심 받은 우리의 몫을 제시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에페 4,1)

부르심을 받은 이의 삶은 육에만 의존해 살아가던 때와는 사뭇 달라집니다. 무엇보다 "시선"에서 큰 차이가 납니다. 부르심 받은 이들은, 자기들만의 성을 쌓고 배를 채우기 위해 사실과 현상에 고정하던 시선에서, 사건과 사람, 관계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과 계획을 읽고 공동선을 열망하는 시선으로 건너간 사람들입니다.

부르심에 합당한 삶은 내적 시각과 신앙의 시선으로 만물을 바라보며 묵묵히 제 몫을 다합니다. 사도가 제시하는 "겸손과 온유, 인내와 사랑, 평화와 일치"의 덕목들은 세속의 눈에는 약하고 보잘것없지만, 영혼의 눈에 아름답고 귀하고 소중합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에페 4,6)

주님은 이처럼 우리를 둘러싼 만물의 깊이 안에 현존하십니다. 현상에만 그치는 시선으로는 만물을 꿰뚫어 움직이시는 하느님을 뵙기 어렵지요. 이 시선은 부르심을 받아 불러 주신 분께 합당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허락된 선물입니다.

"아버지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복음 환호송)

하늘 나라의 신비는 세속적 수완과 처세에 기대어 사는 이들이 아닌, 철부지들에게만 열리는 문입니다. 그들은 하느님밖에는 기댈 존재가 없는 가난하고 단순한 이들이고, 그분에게서 믿음을 거둘 수 없을 만큼 절박한 작은이들이지요. 주님은 결코 이들의 시선과 바람에 실망을 안기지 않으십니다.

사랑하는 벗님! 하느님의 품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며 나아가고 있는지요? 영혼의 시력은 어느 정도인지요? 우리 눈에는 어디까지 보이는지요? 그리고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요?

오늘 눈에 보이는 모든 만물과 현상 안에서 하느님을 볼 수 있기를, 사건과 관계 속에서 그분 뜻과 계획과 섭리를 깨달을 수 있기를, 이 모든 것 안에 가득 차 있는 사랑을 캐내어 품은 우리 자신이 또다른 사랑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랑의 신비를 깨달은 철부지에게 "시대는" 저절로 풀이되는 열린 책입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