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두 존재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루카 12,35)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인과 종의 비유를 들어 하느님과 우리 관계를 이야기하십니다. 주인이 혼인 잔치에 갔다가 돌아올 때 종이 어떤 마음으로 기다리는지 보여 주시지요.
으례 혼인 잔치는 며칠씩 계속됩니다. 요즘처럼 통신 수단이 발달한 것도 아니고 교통 수단도 변변치 못한 때니, 집에서 기다리는 이는 출타 중인 사람에게 마음이 많이 쓰입니다. 도착이 언제일지 모르니 긴장의 끈이 쉬이 놓아지지 않겠지요.
"허리에 띠를 매고"
외적인 자세입니다. 쉬거나 잠들지 않고 언제라도 당장 일어나 움직일 수 있는 태세지요. 옷을 단단히 허리띠로 여미는 건 맞이하고 여독을 풀게 도울 때 걸리적거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저는 당신을 위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는 무언의 상징이지요.
"등불을 켜 놓고"
캄캄한 어둠이 닥쳐도 주인이 멀리서 불빛을 보고 찾아올 수 있도록 등불을 켭니다. 상대의 안전을 위해 환경을 만들어 놓는 것이겠지요.
거기에 더해 이 말씀은 영혼의 준비까지도 포함합니다. 마치 등불이 반짝이듯 영혼도 밝게 빛나는 상태를 유지하라는 것이지요. 이는 육신을 회복시키는 물리적 잠을 거부하라는 뜻이라기보다는, 우리가 기다리는 대상, 주인(님)을 향한 사랑의 불꽃이 계속 타오르게 하라는 의미로 들립니다.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루카 12,38)
주인의 도착으로 깨어 기다린 보람을 느낀 종은 행복합니다. 그리고 또, 지금 이 순간에는 주인 역시 그에 버금가게 무척 행복합니다. 누군가 기약없는 나를 충실히 기다리며 기억하고 고대했다는 뜻이니까요. 그것도 의무가 아니라 사랑으로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인"과 "종"으로 비유하셨지만, 사실 비유 속 두 존재의 모습은 연인에 가깝습니다. 기다리는 이는 충심을 다해 열렬히 기다리고, 오는 이도 사랑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 옵니다. 이 좁혀지는 거리를 관상하다 보면, 아가의 아름다운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내 연인의 소리!
보셔요, 그이가 오잖아요.
산을 뛰어오르고
언덕을 뛰어넘어 오잖아요."(아가 2,8)
"내게 문을 열어 주오, 나의 누이
나의 애인, 나의 비둘기, 나의 티 없는 이여!
내 머리는 이슬로,
내 머리채는 밤이슬로 흠뻑 젖었다오."(아가 5,2)
그렇게 만난 두 존재는 행복합니다. 기다린 이는 갈망하는 이를 맞아들였기에 행복하고, 달려온 이는 드디어 그를 만나서, 그의 사랑을 확인해서 행복합니다. 주인이 종을 식탁에 앉히고 시중을 들만큼 주인은 행복에 겨워 어쩔 줄을 모릅니다. 그런 주인의 사랑을 받으며 종도 더 바랄 나위 없이 행복합니다. 이 벅차도록 설레는 해후의 절정은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서 언젠가 이루어질 약속입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화해와 평화를 이야기합니다.
"한때 멀리 있던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느님과 가까워졌습니다."(에페 2,13)
하느님을 모르던 우리가 하느님과 가까워집니다.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신 예수님의 희생 제사와 속량을 통해 우리가 그분께 나아간 것이고, 그뿐만 아니라 그분께서도 기꺼이 우리에게 다가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통하여 우리 양쪽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에페 2,18)
그리스도의 제자요 벗이며 신부가 된 우리는 어느 민족, 어느 태생이든 관계없이 한 성령을 받아 아버지께 나아갑니다. 각자 출발점은 다르지만 하느님을 향해 점점 모여듭니다. 이 좁혀지는 거리의 정점에 주님께서 계십니다. 거기 그분 안에서 우리는 만나고 일치하며 하나가 됩니다.
이 상태가 곧 평화입니다. 저마다 다른 모든 존재가 있는 그대로 서로 존중하고 포용하며 일치를 이루는 그때, 우리는 자신을 잊은 채 온전히 자신으로 존재하는 완전한 평화를 누릴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공로와 성령의 능력으로 끊임없이 아버지와 "가까워지고" 있고, 그분께 "나아가는" 중입니다. 서로가 결합하여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에페 2,22)
사랑하는 벗님! 이렇게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는 점점 좁혀지고 있습니다. 무한히 근접하는 정점을 향해 서로 나아옵니다. 종이 주인을 기다리듯, 주인이 설레며 달려오듯 하느님과 우리는 서로를 향해 움직입니다. 상대가 가까워질수록 흡족하고 충만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존재 내부를 꽉 채울 때, 묵직한 평화가 밀려듭니다. 최고의 행복입니다.
그러니 벗님! 말씀이 우리를 종이라 부르시든, 신부라 부르시든 사랑을 마음에 한가득 안고 열렬히 주님을 기다립시다. 지금 우리가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든, 기쁨에 겨워 달려오시는 주님을 향해 마주 나아갑시다. 기다림은 갈망이 연소되어 더 큰 사랑의 불을 일으키는 시간입니다. 이 여정 안에 계신 벗님을 축복합니다. 우리, 지치지 말고 사랑하는 분을 충심으로, 열렬히, 반짝이며 기다립시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강 론 말 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0년 10월 22일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0) | 2020.10.22 |
|---|---|
| 2020년 10월 21일 연중 제29주간 수요일 (0) | 2020.10.21 |
| 2020년 10월 19일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0) | 2020.10.19 |
| 2020년 10월 18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0) | 2020.10.18 |
| 2020년 10월 17일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0) | 2020.1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