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에게 누가 주인인지 물으십니다.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그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루카 12,15)
형제 간 유산 다툼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이르십니다. 재산 문제는 비단 예수님께 와서 호소한 그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예수님은 비유까지 들어 이르십니다.
살려면 재물이 필요하지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인간이 정신적 영적 존재이기는 하나 육신을 지녔기에 생명을 유지하는 각종 수단이 필요하고, 그 수단을 얻으려면 상응하는 물질이 지불되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자본주의 사회, 자유경제 체제 아래 살아가려면 재물 없이는 곤란합니다.
문제는 만물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며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는 수단으로 재물을 균형 있게 사용하기보다, 재물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리는 데 있습니다. 재물은 인간의 주인 자리를 꿰어차고 또다른 우상 자리를 차지해 버렸지요.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죽음은 모든 인간에게 예외 없이 제공되는 공평한 미래입니다. 그 때를 미루는 데 재산이 활용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죽음을 영원히 지워버릴 수는 없습니다. 결국 죽음 앞에서 우리는 생명의 주인이 누구이신지 절감합니다. 생명을 자기 맘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으니까요.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루카 12,21)
비유 속 부자는 줄곧 자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의 시선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입니다. "내가 수확한 것", "내 모든 곡식과 재물", "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등등 그에게 재물은 오직 자신의 안위와 평안, 영화를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그에게는 이 모두를 허락하신 주님께 대한 감사도, 함께 수고한 이들에 대한 고마움도, 굶주리는 이웃에 대한 관심도 없습니다. 그는 이처럼 철저히 자신만을 위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 앞의 부유함"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느님 앞에서 부유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유형의 재물로는 그분 앞에서 부유함을 뽐낼 수 없습니다. 모두가 그분의 것이고 어떤 연유로 잠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것일 뿐이니까요.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무언가 베푸시는 이유를 이야기합니다.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에페 2,9-10)
우리가 받은 모든 것은, 물질적인 재물들과 영적인 선물들 모두는 하느님께 받은 것들입니다. 재산과 관계, 성품과 이성, 믿음과 은총까지 그 어느 것도 우리 자신에게서 저절로 생긴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 제 것도 아니면서 자랑할 수는 없지요. 그저 주신 분의 의향을 잘 살펴 제대로 사용하는 것이 우리의 몫입니다.
"선행"
사도는 우리 창조 목적을 콕 짚어 이야기합니다. 선하신 하느님의 자녀로 창조된 우리기에 선행을 하도록 존재적으로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을 수밖에 없지요. 우리가 받은 모든 것을 선한 목적으로, 선한 방식으로 사용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욕망과 재물을 과도하게 탐할수록 선함에서 점점 멀어져 갑니다. 각박하고 인색해지며 오늘 비유 속 부자처럼 자기중심적, 이기적으로 변해갑니다. 경쟁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응당 그래야 하고 그게 당연하다는 유혹에 쉬이 영합하지요. 그게 사람의 시선을 하느님에게서 자신에게로 돌리려는 '재물'이라는 우상이 바라는 바이고, 탐욕의 속성입니다. 이런 이는 지상에서 사용하는 숫자 상으로는 부자일지 모르나 하느님 앞에서는 그분과 어울릴 수 없는 가련하고 비천한 존재일 뿐이지요.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선행을 하면서 살아가도록 그 선행을 미리 준비하셨습니다."(에페 2,10)
완전한 선이신 분이 우리를 선하게 창조하시고는, 선을 행하도록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창조의 본질은 그래서 선입니다. 우리는 본래적으로, 태생적으로 받은 선함을 마음껏 발휘하고 한껏 꽃피우며 살아가도록 부르심 받았습니다. 이를 믿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곧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은총이지요.
주님께서는 재물의 필요성을 부인하지 않으십니다. 많이 가진 부자들을 부정적으로 보지도 않으시지요. 오히려 세상은 하느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자신에게 부여된 재산을 선하게 사용하는 착한 부자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받은 능력을 십분 활용해 재화를 모았다는 성취감에, 나눔이 주는 보람이라는 선물까지 덤으로 받을 것이고, 사람 앞에서도 하느님 앞에서도 부유한 이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벗님이 무엇을 얼마나 가졌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에게서 온다는 진리만 잊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한 번 허락된 생명을 누리면서 내 것도 아닌 것을 움켜쥐느라 하느님에게서 점점 멀어진다면 참 부질없는 삶이 되어 버리겠지요.
주님께서 허락하신 재물을 감사히 사용하고, 지혜를 다해 잘 관리하며, 사랑으로 나누는 주님의 선한 청지기로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쌓이고 쌓인 선행의 기쁨과 보람이 우리를 진짜 부자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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