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10월 22일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dariaofs 2020. 10. 22. 06:17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에게 큰 도전을 던지십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루카 12,49)

불은 삶에 유용하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한 물질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지르러 오셨다는 "불"은 하느님 현존이라는 영적 의미의 "불"일 겁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실 때, "연기가 타오르는 화덕과 횃불"이 제물 사이를 지나가게 하셨고
(창세 15,17 참조),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을 지켜 주신 것이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었지요(탈출 13,22 참조). 엘리야가 바알 예언자들과 대결할 때에도 주님의 불길이 내려와 엘리야 제단의 번제물을 삼켜 버립니다(1열왕 18,38 참조). 오순절에 성령께서도 불꽃 모양의 혀들로 나타나 각 사람 위에 내려앉으셨지요(사도 2,3 참조).

이처럼 불은 성경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확연히 드러내는 매우 중요한 표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런 "불"을 지르러 세상에 오신 것이지요.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 12,51)

예수님께서 평화가 아닌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밝히십니다. 얼핏 생각하면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말씀이지요. 평화가 얼마나 가치로운 성령의 열매인지 우리가 모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참 평화를 거짓 평화와 구별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위선과 거래의 가면으로 위장한 거짓 평화가 아니라, 설령 고통의 늪에 빠져 질척대더라도 내면 깊숙한 곳으로부터 믿음으로 차오르는 참 평화입니다.

예수님이란 존재로 인해 거짓 평화, 위선적 야합, 겉꾸민 화평 따위가 진동과 균열을 일으킵니다. 그분께서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나게"(루카 2,35 참조)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 열매와 여운은 사람 마음 깊은 곳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악하고 불결하며 거짓된 이기심을 드러냅니다.

그렇게 제 안의 악이 건드려질 때, 어떤 경우는 뉘우치고 회개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는 오히려 분노하고 공격합니다. 예수님 당대에도 그랬고, 이천 년의 세월 내내 그랬으며, 지금도 그렇습니다.

"서로 갈라져 ... 맞설 것이다."(루카 12,52)

분열과 함께 대립과 분쟁이 시작됩니다. 이는 영성생활 안에 존재하는 영적 투쟁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 집중하여 물들어 가면 하느님 아닌 것, 그분에게서 온 것이 아닌 힘에 대해 불편함을 느낍니다.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분위기, 하느님의 심성이 아닌 것을 점점 못견디게 되기도 하지요.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머물려고, 모든 것을 해로운 쓰레기로 여기노라."(복음 환호송)

그렇다고 매번 정색하고 치받으며 싸움을 걸지는 않지만, 영혼은 압니다. 그리고 아무리 그런 힘이 지위를 이용해 교묘히 억압하거나 달콤하게 유혹해도 넘어가지 않지요. 분별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둠의 손을 잡거나 대충 영합하지 않고 부단히 선을 향하니 분열이 일어날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해로운 쓰레기"라는 격한 표현까지 사용한 것입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영적 삶의 진수를 보여 줍니다. 사도가 에페소의 형제들을 위해 기원하는 축복의 내용이 얼마나 아름답고 영롱하고 풍요로운지 말씀을 반복해 읽는 것만으로 마음 한가득 뿌듯한 행복이 차오를 정도입니다.

"내적 인간이 굳세어지게 하시고 ...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마음 안에 사시게 하시며, ...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게 하시기를 빕니다."(에페 3,17)

"이렇게 하여 여러분이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빕니다."(에페 3,19)

영성생활을 하는 이에게 이보다 더 큰 축원이 또 있을까요!!! 굳은 믿음으로 단련된 내면, 그리스도의 거처, 사랑에 기인하는 존재적 삶, 그리고 하느님의 충만함. 이 모두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신부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바람입니다. 영적 삶의 본질이고 목적이며 진수이고 최고봉의 절정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충만하고 복된 삶까지의 여정 안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 코스 중 하나가 "분열"입니다. 그저 헤집고 갈라놓고 대적시키려는 분열을 위한 분열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과 하느님의 것이 아닌 것들에 대한 단호하고 추상같은 분별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적당주의적 평화는 발을 붙일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불을 지르고 싶어하십니다. 우리 마음에 성령의 불을 놓으셔서 우리가 하느님의 것과 아닌 것을 식별하는 사랑의 존재가 되길 바라십니다. 하느님에게서 오지 않은 것들에 둘러싸여 있다면 이런 과정이 피곤하고 불편하고 힘겨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짓 평화의 수면 위를 살살 오가는 정도로는 진정한 평화의 끝자락에조차 가 닿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과 함께 타오르는 이 사랑의 투쟁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는 영적 삶에 들어선 이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지르시는 불로 지펴진 이들이지요. 우리는 성령께 의지해 믿음의 결단을 이어가며, 사랑의 원리를 사는, 그리스도의 거처입니다. 하느님의 충만함을 희구하는 사랑의 길에 들어선 우리 모두를 응원합니다. 오늘도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바를 사랑하며, 진정한 평화를 쟁취하려는 용기로, 중단 없이 꿋꿋이 나아가시길 축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