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역사의 굴곡과 얼룩에도 하느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너희는 모여들 오너라. 뒷날 너희가 겪을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일러 주리라."(창세 49,1)
야곱이 숨을 거두기 전에 아들을을 모아 놓고 유언을 합니다. 이스라엘 집안의 우두머리이고 하느님의 특별한 총애를 받던 가장의 유언은 예언자의 신탁과도 같은 무게를 지닙니다. 지금 야곱의 입에 미래를 담아 주신 분은 주님이시지요.
"유다에게 조공을 바치고 민족들이 그에게 순종할 때까지 왕홀이 유다에게서 지휘봉이 그의 다시 사이에서 떠나지 않으리라."(창세 49,10)
야곱이 유다에게서 민족을 다스릴 존재가 나오리라고 축복합니다. "왕홀"과 "지휘봉"은 권세와 영광, 다스림을 상징하는 도구들이지요. 그런데 유다는 맏이도 아니고, 이스라엘을 멸족의 위험에서 건진 요셉만큼의 업적을 지니지도 못했습니다. 오히려 과부가 된 며느리 타마르와의 의도치 않은 추문까지 꼬리표로 달게 된 사람이지요.
복음은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마태 1,1)입니다.
"타마르는 유다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마태 1,3)
과부가 된 타마르는 시아버지인 유다에게서 아들을 얻어 가문을 이은 여인입니다.(창세 38장 참조)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고"(마태 1,5)
라합은 이스라엘 정탐꾼들을 도운 대가로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건진 예리코의 창녀지요.(여호 2장;6장 참조)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마태 1,5)
모압 여자 룻은 남편이 죽은 뒤 베들레헴 출신 시어머니를 따라와 가문의 구원자였던 보아즈의 아내가 됩니다.(룻기 참조)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마태 1,6)
우리야의 아내였던 밧 세바는 다윗 임금이 우리야를 살해하고 차지한 여인으로 솔로몬의 어머니입니다.(2사무 11-12장 참조)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마태 1,16)
우리가 잘 아는 나자렛의 마리아도 정상적이 혼인 관계에서가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하여 구세주를 출산한 믿음과 순종의 여인이지요.
예수님이 탄생하신 가문의 족보는 여느 보통 사람의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흠도 있고 티도 있는 사람살이의 면면과 과부, 이방인, 불륜 등 가련하고 불쌍하고 나약한 실존이 다 들어 있으니까요. 유다 가문을 통해 하느님의 뜻은 과정 안에서 저질러진 인간의 수치와 죄악을 딛고 완성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은 겉보기에 순결하고 완벽한 가문을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그런 가문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예수님은 당신 백성과 같아지시기 위해,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환경과 관계성 안으로 들어오신 것이지요. 그래서 그분은 우리 중의 한 분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통치는 그래서 연민과 자비로 이루어집니다. 세상 임금이 휘두르는 권력과 압제의 지휘봉이 아니라 "가련한 백성의 권리를 보살피고 불쌍한 이에게 도움을 베푸는"(화답송) 손길이지요. 이처럼 탄생에서부터 인간의 가난과 약함을 짊어지신 예수님을 통해 "세상 모든 민족이 복을"(화답송) 받습니다.
사란하는 벗님! 하느님은 모든 역사를 한눈에 보실 수 있지만, 우리 인간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구비구비마다 희로애락의 롤러코스터를 타지요. 함부로 판단하고 무시하기도 합니다. 우리 시야가 그정도밖에 안 되니 그렇습니다.
우리 역사 안에 움직이시는 하느님의 계획을 알아보지 못하는 시야의 한계성은 믿음과 순종으로 극복될 수 있습니다. 오늘 족보에 등장한 마리아와 다른 용감한 여인들이 보여준 덕행이지요. 우리 각자의 족보와 인생 여정에는 어떤 하느님의 메세지가 담겨 있을지 숙고하고 통찰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약하고 부족해도 하느님은 결코 구원의 뜻을 포기하지 않으시니, 용기를 가지고 오늘부터 시작되는 대림 시기의 둘째 부분을 성모님과 함께 걸어갑시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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