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인간의 무능함이 하느님의 권능을 통해 어떻게 승화되는지 보여 주십니다.
"그의 아내는 임신할 수 없는 몸이어서 자식을 낳지 못하였다."(판관 13,2)
제1독서는 드라마틱한 사건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삼손에 관한 일화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성경에 기술된 대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었지요. 그녀는 천사에게서 들은 대로 삼손을 출산하여, 천사가 일러 준 대로 "모태에서부터 이미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으로 아이를 기릅니다.
"그가 이스라엘을 필리스티아인들의 손에서 구원해 내기 시작할 것이다."(판관 13,5)
구원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하게 막혀 있던 곳에 길을 내고 열매를 맺습니다. 애초 무난히 뚫려있던 길이라면 하느님의 은총으로 돌리지 않을 가능성이 참 크지요.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엘리사벳이 아이를 못낳는 여자였기 때문이다."(루카 1,7)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잉태에 얽힌 일화를 다룹니다. 하느님 앞에서 의롭고 흠 없이 살아가는 즈카르야, 엘리사벳 부부는 안타깝게도 아이가 없습니다. 요한의 어머니는 본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었지요. 요한 잉태 후 엘리사벳이 고백하듯이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은 처절했으리라 여겨집니다.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루카 1,17)
즈카르야에게 파견된 천사 가브리엘은 장차 태어날 아이의 이름부터 성장 후에 그가 이루어야 할 사명까지 이야기합니다. 오시는 메시아는 맞이할 수 있도록 이스라엘 백성을 준비시키는 역할이지요.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루카 1,20)
즈카르야는 자기 아내가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사실에 묶여있어 천사의 말을 믿기 어려워합니다. 그 옛날 선조 아브라함과 사라가 그러했듯(창세 17,17 참조) 인간적인 논리가 앞선 것이지요.
"벙어리"
즈카르야는 믿지 않은 대가로 벙어리가 됩니다. 불신이 무능을 초래한 것이지요. 그가 믿지 않았을 뿐 반드시 이루어질 하느님의 뜻이 열매를 맺을 때까지 얻게 된 일시적 무능입니다. 인간의 무능함에 집착했던 그가 또다른 무능을 열 달 떠안게 된 셈이지요.
하느님의 말씀을 믿지 않은 그가 인간의 말조차 하지 못하게 된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그토록 쉽게 했던 말들이 온전히 하느님의 은총이었음을 인식하면서, 생명이야말로 당연히 그분 것이고 그분 손안에 있음을 깨닫는 귀한 시간이 되었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엘리사벳이 요한을 낳고 이름을 지어주는 여드레째 되는 날, 즈카르야는 그 긴 침묵의 터널을 지나 교회가 "즈카르야의 노래"(루카 1,67-79)라고 부르는 엄청난 신앙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 내용은 메시아와 그의 선구자에 대한 것이지요. 엘리사벳 태 안에서 요한의 살과 피가 엮어지는 동안에 즈카르야의 영혼 안에서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서 이루실 구원과 속량의 계획이 인간의 언어로 통찰되어집니다.
성경은 이처럼 아이를 못 낳는 여인들에게서 구원의 계획이 태동함을 증언합니다. 조금 사안이 다를 수 있지만, 동정녀인 마리아의 경우도 맥을 같이 하지요. 구세사는 인간의 무능이 하느님의 영광으로 승화되는 현장입니다.
어쩌면 하느님은 누군가 지닌 유능하고 탁월한 부분보다, 그가 감추고 싶어하는 무능하고 미약한 부분에 더 관심이 많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께서 그 부분에 임하시면, 바로 그곳을 통해 당신 권능이 더욱 크게 드러날 수 있으니까요.
사랑하는 벗님! 우리 안에 생명을 잉태하지 못하고, 그래서 이웃과 세상에 생명을 내어주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지, 혹 있다면 어느 부분인지 숙고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이번 성탄에 주님이 바로 그곳에서 새로운 탄생을 준비하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깊이깊이 갇혀 있던 숨은 은총이 힘차게 터져 나와 아름답게 펼쳐지길 축원합니다. 이 기적 앞에서 모든 이가 함께 찬양하며 주님께 영광을 드릴 것입니다. 아멘. 그대로 이루어지소서.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강 론 말 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0년 12월 21일 대림 제4주간 월요일 (0) | 2020.12.21 |
|---|---|
| 2020년 12월 20일 대림 제4주일 (0) | 2020.12.20 |
| 2020년 12월 18일 대림 제3주간 금요일 (0) | 2020.12.18 |
| 2020년 12월 17일 대림 제 3주간목요일 (0) | 2020.12.17 |
| 2020년 12월 16일 대림 제3주간 수요일 (0) | 2020.1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