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설레는 만남이 펼쳐집니다. 이 기쁨을 제1독서와 복음이 서로 화답하듯 주고받지요.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루카 1,39)
천사 가브리엘의 방문, 성령 잉태 후 마리아는 길을 떠납니다. 요즘과 달리 교통이나 편의시설, 치안 수준에서 당시는 젊은 여성이 여행을 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게다가 서둘렀다고 하네요. 신중하고 차분한 면이 없지 않을 것 같은 마리아에게서 매우 역동적이고 적극적인 면모가 돋보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천사가 전한 엘리사벳의 고령 임신을 확인하기 위함이라는 해석도 있고, 엘리사벳의 노산을 돕기 위해 갔다는 해석도 있습니다만, 지금 마리아를 움직이는 힘은 그 무엇보다 그녀 태중에 잉태된 주님의 마음에서 솟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제1독서에서 아가의 여인은 자기를 향해 시시각각 다가오는 연인을 떠올리며 환호합니다.
"내 연인의 소리! 보셔요. 그이가 오잖아요. 산을 뛰어오르고, 언덕을 뛰어넘어 오잖아요."(아가 2,8)
사랑에 깊이 빠진 한 여인이 보입니다. 사랑으로 그녀의 볼은 붉게 달아오르고 심장은 쿵쾅거립니다. 그녀는 뜨거운 사랑의 기운을 주체하지 못해 외치고 있습니다. 타오르는 사랑을 입안에 담아둘 수는 없지요. 아직 연인이 자기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이지만, 그녀에게는 연인의 수려하고 황홀한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현재진행형입니다.
여인은 연인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산과 언덕을 훌훌 날듯이 뛰어온다고 상상하지요. 맞습니다. 그녀 상상 속의 모습과 실제 다가오는 연인의 모습은 하나입니다. 게다가 기다리는 이나 다가오는 이나 한 마음입니다. 서로를 향한 사랑! 그 일치의 접점을 향해 몸과 마음이 환호하며 바삐 움직입니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쳤다."(루카 1,41-42)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루카 1,44)
창조주의 방문에 어머니 엘리사벳과 태중의 아기가 함께 환호합니다. 세상의 눈에는 한 여인이 또 다른 여인을 만나고 있지만, 영의 눈으로는 창조주와 피조물이, "말씀"과 "소리"가,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과 그분의 "선구자"가 만나고 있습니다.
그들의 기쁨 속으로 들어갑니다. 오시는 분은 온 인류가 기다린 분이고 또 우리가 매년 기다리고 맞이하는 분이십니다. 아울러 올해 코로나19라는 인류 공통의 특수 상황과 각자 개인이 겪는 실존적 상황에서 기다리고 있는 분이시기도 합니다.
"나의 애인이여, 일어나오. 나의 아름다운 여인이여, 이리 와 주오."(아가 2,10)
그렇게 서둘러 껑충껑충 산까지 뛰어넘으며 신이 나서 달려오던 연인이 어찌된 일인지 여인이 있는 곳으로 내처 들어오지 않고 멈춥니다. 그리고는 "담장 앞에 서서, 창틈으로 기웃거리며 창살 틈으로 들여다보면서" 서성이지요. 그리고 속삭입니다.
아무리 사랑으로 물불 안 가리는 전능한 연인이어도 올 수 있는 곳은 거기까지인가 봅니다. 이제부터는 여인이 직접 문을 열고 나가야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그 경계에 서서 연인이 달콤한 목소리와 달콤한 내용으로 여인을 부릅니다. 이른바 꼬셔내는 듯한 분위기지요.
여인이 있는 곳은 "바위틈, 벼랑 속"(아가 2,14)으로 표현됩니다. 어딘가 비좁고 음습하고 위험하고 꽉 막힌 듯한 곳이지요. 요한이 머무르는 엘리사벳의 태 안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이를 애타게 찾으면서도 정작 용기를 내어 마음을 열지 못하는 여인의 한계일 수도 있습니다. 메시아를 애타게 부르지만, 제대로 알아보지 못해 선뜻 맞이하지 않는 인류의 상태를 가리킬 수도 있지요.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
마리아는 믿음으로 복된 여인입니다. 이 믿음이야말로 지금 메시아를 기다리는 인류와, "바위틈, 벼랑 속" 비둘기 같이 두려움에 주저하는 여인과, 각자의 어둠과 상처에 묶여 있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묘약일 것입니다.
기다림의 시기는 우리에게 믿음을 촉구합니다. 믿음은 주님께 벼랑 끝에서 몸을 던지는 결단이고 선택이지요. 그래서 믿는 이는 기쁩니다. 오시는 분을 이미 기쁨으로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기뻐하는 이는 행복합니다. 주님께서 주고자 하시는 행복을 믿음으로 얻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와 사랑을 나누고 일치를 이루시려 위엄과 위용을 던져버리시고 (채신머리 없이) 겅중겅중 뛰어오시는 주님과의 만남을 가슴 설레게 고대하는 오늘 되시길 축원합니다. 우리를 둘러싼 시대와 상황이 아무리 어둡고 각박해도 사랑하는 그분을 생각할 때 마음에서 솟아나는 영적 기쁨은 아무도 빼앗아가지 못한답니다. 아가의 신부처럼, 어머니 태중의 요한처럼 이 기쁨과 이 행복을 온전히, 마음껏 누리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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