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총의 성탄 시기를 마무리하는 오늘, 미사의 말씀은 아주 커다란 행복의 현장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곧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는 것을 보셨다 ...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10-11)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입니다. 하느님과 하나이신 분이 인간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놀라운 겸손의 현장이고, 또 성삼위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은총 가득한 순간입니다.
이 장면 안에서는 모두가 기쁘고 행복합니다. 놀라운 광경과 신비로운 목소리도 그렇거니와 이 은총이 예수님 한 인간에게만 내리시는 축복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임을 저마다 감지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리고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 자신의 신원에 대해 고민하며 하느님의 뜻을 찾으셨을 예수님께는 앞으로의 길을 확고히 하는 결정적 순간이 되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너는 내 마음에 든다는 말씀이 예수님께는 하느님 아들로서의 신원을 확신해주는 말씀이 되었습니다. 인간들 사이에서도 이 말은 마법 이상의 특효약일 것입니다 누군가 나를 마음에 들어하고 사랑한다는 말은 의혹에 싸인 마음을 붙들어 주고 방황하는 영혼에게 힘을 줍니다. 절망으로 쓰러져가는 이를 일으켜 세우고, 의기소침한 어깨를 활짝 펴게 해 주며, 슬픈 눈물을 닦아 주지요. 새롭게 시작할 힘을 불어넣어 주시는 이 말씀에 오래 머물러 봅니다.
"나는 보았다. 그래서 이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증언하였다."(영성체송)
이 영광스런 광경을 지켜본 요한이 고백합니다. 이 현장에는 세례자 요한과, 또 다른 이들도 있었겠지요. 세례 후 성부 하느님과 성령의 방문을 받으신 예수님은 이렇게 세상에 드러나십니다. 또 다른 주님 공현의 현장인 셈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주님의 종의 첫째 노래가 들려 옵니다.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이사 42,1)
복음 속 하느님의 말씀과 예언자가 전하는 목소리가 겹칩니다. 오늘 복음 내용이 바로 예언서의 이 부분의 실현임을 증명하고 있지요.
하느님의 영을 받은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울타리를 넘어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실 것입니다. 주님이 어느 민족이나 국가에 국한된 분이 아니심을 드러냅니다. 종족과 율법, 할례와 안식일 규정으로 구분되는 구약의 하느님 백성이 이제는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난 모든 이에게로 확장되지요. 우리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
제2독서는 성령에 이끌려 고르넬리우스의 집을 방문한 베드로의 설교 중 한 대목입니다.
"여러분은 ...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신 일도 알고 있습니다."(사도 10,38)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세례에 대해 증언합니다.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시어 당시 종교 기득권자들의 유대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셨던 예수님께서 실은 하느님의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신 메시아이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곧 만민의 주님을 통하여"(사도 10,36)
열렬한 유다교 신자였다가 예수님의 복음을 따르는 이들 중에는 율법이 정해 놓은 이방인과의 관계성 앞에서 멈칫대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할례나 안식일법, 정결례 등이 그들에게 갈등 요소가 되었지요. 베드로 사도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민의 주님"이시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제 하느님 앞에 유다인과 이방인은 차이가 없습니다.
오늘 독서의 대목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 설교가 이루어진 후 "말씀을 듣는 모든 이에게 성령이 내리셨다"(사도 10,44)고 하지요. 이어 베드로는 "우리처럼 성령을 받은 이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는 일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반문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포함한 온 세상 만민의 구원자시고 주님이심이 말씀 안에 새겨집니다.
성탄 시기는 이처럼 장엄하고 영광스럽게 예수님을 세상에 드러내면서 막을 내립니다. 주님의 구원이 온 세상에 내립니다. 민족과 국적, 인종과 피부색, 학식과 재력, 종교와 문화, 신분과 직업을 막론하고 모든 이가 구원자 예수님의 자비 앞에 드러납니다.
사랑하는 벗님!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마주한 우리 모두를 바라보시며 기쁨에 겨워 외치십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사랑의 불로 정화되고 성화되는 이 자리에서 주님이 참 행복해 하십니다. 우리도 행복합니다. 이 행복이 연중시기 내내 이어지길 축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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