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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자비 주일 - 코로나19 백신 보급 현황과 나눔 운동

dariaofs 2021. 4. 10. 00:17

가톨릭교회가 백신 나눔 운동 펼치는 이유,  형제적 사랑으로 인류 공존의 길 선택하게

 

백신 쏠림 현상

전 세계가 코로나19 백신을 확보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과의 사투가 ‘백신 확보 경쟁’이라는 제2막에 접어든 셈이다.

지구촌에서 백신이 투여된 횟수는 2일 현재 5억 9600만 회(도스, dose, 1회 접종분)에 이른다. 전 세계 78억 인구 가운데 7.7%만이 최소 1회 접종한 셈이다.

현재 보급 중인 백신들은 대부분 1인당 2회 접종을 필요로 하는데, 온전히 2차 접종까지 완료한 숫자는 이보다는 훨씬 적다.

미국 CNN과 아워월드인데이터(OWID)가 제공하는 백신 접종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세계 각지로 보급된 백신은 158개 국에 달한다.

이 가운데 백신 투여가 가장 많이 이뤄진 곳은 미국으로 1억 5000만 회 접종됐다. 이어 중국, 인도, 영국 순으로 접종 현황 상위 10개국이 약 5억 회를 접종했다. 접종자의 약 80%가 상위 10개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현재로선 백신 보급이 코로나19 퇴치의 유일한 희망이다. 그러나 그 희망이 국가 경제력에 따라 쏠림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12월 백신 보급이 시작된 이후 4개월째에 접어들었지만 ‘백신 불균형’이 극심하며, 백신 확보 전쟁도 사실상 선진국만의 경쟁으로 이뤄지는 것이 지표로 드러나고 있다. 교황청이 코로나19 백신 불균형 해소를 적극 호소하고 나서는 이유다.

이에 한국 교회는 보편적 형제애 정신에 입각해 ‘백신 나눔 운동’에 돌입했다. 11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을 맞아 백신을 보급받을 기회조차 없는 가난한 나라와 이웃을 위해 우리의 정성을 나눠야 하는 이유를 살펴봤다.

아프리카 54개국 중 10개국 백신 접종 시작

우리나라는 지난 2월 26일 백신 접종에 돌입한 이래, 한 달여 만인 6일 현재 99만여 명이 1차 접종을 마쳤다. 2차 접종은 2만 7000명가량에 그친다. 접종 인원수로는 세계 42번째이며, 인구 대비 접종률(1.9%)은 109번째로, 접종을 시작한 국가 중에서도 뒤처져있다.

문제는 앞으로 보급될 백신 물량마저 미국과 유럽, 중동 국가에 치우쳐 있다는 점이다. 현재 유럽연합(EU)은 18억 회분, 미국이 12억 회분, 영국이 4억 5000만 회분을 계약해 확보한 상태다.

미국의 경우, 인구의 4배에 달하는 백신 물량을 선점해놨다. 선진국들 또한 자국의 안전을 위한 조치여서 이를 두고 무조건 부도덕하다고 비난할 순 없지만, 가난한 국가나 개발도상국들이 한정된 제약회사들의 백신을 얻기란 더욱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다.

현재 백신 접종이 이뤄진 상위 50개국 가운데엔 아시아 국가가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말레이시아, 네팔, 스리랑카 등 9개국밖에 되지 않는다.

아프리카 54개국 가운데 백신 접종을 조금이나마 시작한 나라는 10개국가량밖에 안 된다. 모두 인구 대비 접종률이 1%도 되지 않는다. 아프리카 54개국, 12억 명이 백신을 구경하기까지 몇 년이 걸릴지도 불투명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에 대해 이미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테드로스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은 “백신 보급이 치명적인 도덕적 실패 위기에 처해 있다”고 묘사했다.

선진국의 과도한 선주문으로 백신 배포가 짧은 사이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도 백신을 전혀 받지 못한 나머지 60여 개국 가운데 일부는 2023년이 되어도 백신을 구경하지 못할 것이란 보고까지 나오고 있다.

이들을 포함해 인구 전체가 온전히 2회 접종할 분량을 확보하지 못한 국가도 우리나라를 포함해 상당하다.

백신 사재기 폐해에 관한 연구 보고서

미국 MIT 공대가 발행하는 저명한 연구 잡지 ‘테크놀로지리뷰’는 최근 ‘왜 인류 전체가 백신 접종을 하지 않으면 모두가 위험에 처하는가?’란 주제 기획을 통해 “미국과 영국, 캐나다 등 선진국은 이미 수천만 명이 1회 접종을 마쳤고,

정부 차원의 백신 프로그램이 한창 진행 중이지만, 저소득 국가들의 경우, 첫 접종도 받지 못한 채 발을 구르는 상황”이라며 “개발도상국 85개국이 2023년까지 백신을 온전히 접종하기도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콜롬비아 전염병학자인 이사벨 로드리게스-바레커씨는 “백신 공급에 세계적 조정이 없다면, 질병과 사망 등에 대한 부담 또한 더욱 커질 것”이라며 “코로나19 감염 속도에 비해 백신 생산은 너무 적고, 보급 또한 무척 더디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백신의 발빠른 공급이야말로 바이러스의 새로운 변이를 막고, 전 세계가 경제적 피해와 부담을 줄이는 유일한 길이라고 전하고 있다.

아울러 현재 보급 중인 첫 번째 백신들의 효능이 빠르게 집단 면역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도 백신이 전 세계에 함께 보급돼야 하는 이유다.

미국 메릴랜드대학의 경제학자 세브넴 칼렘리 외즈칸 교수는 “가난한 국가들이 백신 접종의 혜택을 얻지 못한다면, 전 세계는 무역 감소와 신흥시장 파탄으로 세계 경제가 약 9조 달러의 손실을 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외즈칸 교수는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은 보건 위기에서 탈출해도 그들이 거래해야 할 나라들이 여전히 코로나19 위기 속에 있다면 경제는 결코 회복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격차로 인한 경제적 고통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해석했다.

백신의 보편적 접근 위한 교회 노력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백신이 본격 보급되기 전부터 이 같은 현상을 우려해 ‘백신의 보편적 보급’을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교황은 지난해 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을 맞아 ‘로마와 전 세계에’(우르비 엣 오르비) 보내는 공식 메시지를 통해서도 “모든 이가 백신의 희망을 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곧이어 교황청 코로나19위원회는 12월 29일 ‘모두를 위한 백신, 더 공정하고 건강한 세상을 위한 20가지 제언’을 담은 공지를 발표했다.

위원회는 “백신으로 유행병을 치료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모든 이가 이용할 수 있어야 하며, 특별히 그 희망은 지구 상 가장 취약하고 빈곤한 이들을 위해서도 사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A4용지 10여 쪽에 달하는 이 공지는 “여러 형태의 민족주의가 스스로 문을 닫아 인류 전체를 진정한 가족으로 살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며 “전 세계 교구 및 주교회의, 지역 공동체가 긴밀히 협력해 정부를 돕고, 이를 통해 보편 교회가 지구촌 가족을 위해 백신과 치료제의 공평한 분배 목표 달성을 이루는 데에 모범이 되도록 힘써달라”고 제언했다.

교황청 자선소는 1월부터 ‘백신 나눔’을 위한 기부 계좌를 만들어 홈페이지를 통해 기부를 받고 있다.

서방 세계를 중심으로 백신 사재기가 이어지자, 미국과 영국 주교들도 성명을 내고 “지구 상 모든 인류가 백신 접종의 희망을 얻고,

이웃을 위한 배려로 모두가 다시 주님 앞에 모이길 기대한다”면서 “백신 나눔 캠페인을 신속히 시행하고, 각국의 수요를 충족시키도록 유통 능력을 함께 개발해 세계가 공동선과 연대의 새로운 시작을 선보일 때”라고 밝혔다.

미국과 유럽 지역의 몇몇 교구에서는 현재 백신 접종을 독려하거나, 아시아인과 흑인 등 유색 인종이 접종 혜택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타국을 위한 모금 활동을 시작한 곳은 아직 없다.

교구별 계좌로 모금, 추후 교황청 송금

이에 한국 교회는 지난 3월 주교회의 봄 정기총회를 통해 전국 교구 차원의 ‘백신 나눔 운동’을 펼치기로 했다.

서울·대전ㆍ부산ㆍ인천ㆍ춘천교구가 계좌를 개설해 모금을 시작했고, 이외 교구와 한국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도 백신 나눔 운동을 곧 시작할 예정이다.

각 교구는 교구 계좌 모금과 본당 2차 헌금 등을 통해 1명이 백신을 온전히 접종하는 2회분 비용 약 6만 원씩을 기부받는 형식으로 이를 교황청으로 송금할 계획이다. cpbc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도 ‘백신 나눔 운동’을 적극 알릴 계획이다.

부산교구장 손삼석 주교는 교구 주보를 통해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시작하는 백신 나눔 운동을 알리면서 “우리는 무료로 받는 접종 혜택을 가난한 나라 국민들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것이 이번 나눔 운동의 취지”라며 “세계 곳곳에서 도움을 손길을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사랑을 실천해주길 바란다”고 독려했다.

이정훈 기자(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