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1년 4월 26일 부활 제4주간 월요일

dariaofs 2021. 4. 26. 06:25

오늘 미사의 말씀은 목자의 목소리를 들려 주십니다.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요한 10,3)
목자도 자기 양들을 잘 알지만, 양들도 목자의 음성을 압니다. 목자가 양들을 이끌 때 그 목소리에 귀를 쫑끗 세우고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 목소리를 잘 듣고 순히 따르면 풀밭도 나오고 샘터도 나왔지요. 맹수나 절벽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양들에게 목자의 목소리는 생명과 직결됩니다.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요한 10,3)
게다가 목자는 아무리 양들의 수효가 많아도 하나하나를 구별할 만큼 애정이 깊습니다. 각자의 이름도 기억해, 하나하나에게 알맞게 붙여주고 각자의 필요에 맞게 돌보지요. 목자에게 양떼는 그저 한 무리의 집단이 아니라 개별적 관계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입니다.

목자는 양의 이름을 알고, 양은 목자의 목소리를 압니다. 서로에 대한 이 앎은 사랑과 존중, 신뢰와 순종으로 탄탄히 엮여 있습니다.

제1독서에서는 그런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사도 11,9)
베드로가 기도 중에 주님의 환시와 목소리를 체험합니다. 이방인과의 접촉이나 식사를 부정한 일이라 배워왔고 지켜온 독실한 유다인으로서 베드로는 적이 당황하고 저항도 해보지만 결국 이 말씀에 순종하지요. 이 목소리가 주님의 목소리임을 알아들었기 때문입니다.

"야포로 사람들을 보내어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데려오게 하여라."(사도 11,13)
이탈리아 부대의 백인대장인 코르넬리우스도 천사를 통해 주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그의 순종으로 베드로와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이방인들도 성령을 체험하여 신앙의 지평이 열리게 됩니다.

"내가 무엇이기에 하느님을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사도 11,17)
베드로의 이 물음은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요한 10,16) 하신 예수님의 의지와 연결됩니다. 이미 예수님은 당신 양 우리 밖의 양들에 대해서도 일찌감치 그 이름까지 알고 계셨습니다.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여러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그 안에는 착한 목자이신 우리 주님의 목소리도 있지만, 빛의 천사를 가장한 악의 목소리도 끼어 있지요. 악은 목자와 우리의 사이를 갈라놓고 선과 진리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데 온갖 수단을 강구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요한 10,10)
이것이 착한 목자의 목소리가 지닌 특징입니다. 목자가 양을 부르는 이유는 탐욕이나 자기 만족이 아니라 오로지 양들을 위해서지요. 늘 듣기에 좋기만 한 감언이설이 아니기에 듣는 편에서 두려움이나 저항도 생길 수 있지만, 얕은 감정과 자기애를 넘어서 경청해 보면 압니다. 목자는 양들이 행복에 넘치고 넘쳐 충만하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사실을요.

아기가 좋아한다고 부모가 늘 단것만 주지 않는 것처럼, 우리에게 들려오는 주님의 목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서 안의 "잡아먹어라." 하는 말씀도 율법을 어기라는 뜻처럼 들렸으니까요.

그런데 주님의 말씀을 믿음의 채로 걸러서 들으면 목소리에 깃든 그분의 사랑과 염려, 신뢰가 들립니다. 우리의 편협한 지식이나 아집, 욕망이 걸러지기 때문이지요. 그 목소리에 순종할 때 우리는 생명을 얻고 또 얻어 풍요로워지고 충만해집니다. 이것이 곧 성령과 함께하는 삶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고, 그분이 주시는 것은 모두 좋은 것이라고 믿기만 하면 고통과 시련의 껍질 너머에 은총이 감추어져 있다는 걸 알게 되는 날이 머지 않아 반드시 옵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벗님! 오늘도 힘 내어 목자를 따라나섭시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 생명의 샘으로 이끄시는 목자의 사랑을 믿고 순종하는 벗님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