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1년 4월 27일 부활 제4주간 화요일

dariaofs 2021. 4. 27. 08:09

오늘 미사의 말씀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강조하시십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요한 10,25)
유다인들이 예수님의 신원에 대해 거듭 질문을 던집니다. 사실 그동안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고 여러 경로로 보여 주셨음에도 그들이 믿지 않았던 것이지요.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시거나 치유와 구마로 사람들을 구원해 주실 때 결코 당신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은 아버지께서 시키시는 일만 할 뿐이고, 그분의 말씀만 전할 뿐이라고 누차 말씀하셨지요. 그래서 많은 이들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을 통해 보이지 않는 아버지 하느님을 체험하고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요한 10,29)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구원을 얻기 위해 그분 주변으로 모여드는 이들은 모두 아버지께서 보내신 이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내치지 않고 맞아들이시어 모두가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목숨을 바쳐 끝까지 지켜주시는 착한 목자시지요. 아버지께서 선택해 아드님에게 보내시는 이들은 구원의 여정 안에 든, 복된 이들입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 10,30)
예수님 입에서 드디어 결정적인 말씀이 선포됩니다. 유다인들이 가장 궁금해하던, 아마도 명확하게 듣고 싶기는 하지만, 실은 직면하기 두려운 내용일 겁니다. 그런데 유일신 하느님을 섬기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아들이란, 그것도 율법이 정한 신분에 속하지 않는, 출신이 뻔한 일개 목수 아들의 자기 계시는 유다인들에게 신성모독으로 들릴 뿐입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하지만 주님을 믿는 우리에게 이 말씀은 사랑의 확증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사랑으로 하나라는 사실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랑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그 사랑이 바로 우리가 닮아갈 수 있는, 우리에게도 실현 가능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이 말씀은 만물의 근원이시고 창조주이신 분, 우리의 주인이신 분이 친히 우리 곁에 내려와 우리 곁에 사시며 목숨까지 바쳐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자녀들, 당신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을 결코 어둠 속에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아무리 우리가 큰 죄인이어도 그렇습니다.

제1독서에서는 교회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는 그들의 소문을 듣고 바르나바를 안티오키아로 가라고 보냈다."(사도 11,22)
박해로 흩어진 이들이 처음에는 이방 지역에 사는 유다인들에게, 그리고 그리스 사람들에게도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주 예수님의 복음은 많은 이들을 구원의 길로 이끌어 곳곳에 신도의 무리가 형성되게 되지요.

모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는 그곳에 바르나바를 파견해 그들의 신앙이 잘 성장하도록 돕습니다. 지역이 다르고 민족이 달라도 하느님의 백성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바르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타르수스로 가서, 그를 만나 안티오키아로 데려왔다."(사도 11,25-26)
바르나바는 주님을 체험한 후 돌아선 사울을 이방인을 위한 복음 선포의 협력자로 합류시키지요. 사도행전 저자가 서술한 대로 바르나바가 착하고 선하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가능했을 겁니다. 이 둘의 관계가 물론 끝까지 이어진 건 아니지만 그 또한 교회 성장을 위한 주님의 계획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사도행전 안에 역동적으로 보여지는 교회의 모습, 즉 교회가 교회를 낳고, 신생 교회의 성장을 도우며 함께 자라나는 여정의 모범이며 희망은 아버지와 아들, 성령 안의 사랑과 일치의 관계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이시고, 삼위 하느님이 사랑의 유대로 한 분이신 것처럼, 교회는 끊임없이 이 일치를 지향하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이 말씀을 통해 그 사랑 안에 푹 잠기고 머무르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언젠가 천상 혼인잔치에서 주님 얼굴을 마주뵙고 누릴 영원한 행복을 주님께서 잠시나마 미리 맛보게 해 주시는 은총을 허락해 주시길 빕니다. 아버지와 아들, 그 사랑의 유대 안으로 초대되어 주님 안에 한 형제된 우리 모두는 복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