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구원의 약속을 보증해 주십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요한 14,2)
예수님께서 제자들 곁을 떠나시기 전에 그들에게 희망의 말씀을 하십니다. "아버지의 집"은 통상적으로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에 머무르시는 공식적인 현존 장소인 성전을 가리키지만, 초월적으로는 하느님 나라를 의미하기도 하지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는 스승이 걸어갈 고난과 박해와 죽음의 길이 고스란히 기다립니다. 당장은 그들이 깨닫지 못하지만 이미 예수님께서 누차 말씀하신 바지요. 어쩌면 이 지상에서 머리 둘 곳 없으셨던 스승처럼 제자들에게도 그럴듯한 자리가 주어지지 않을 겁니다.
"거처할 곳"은 살 곳, 곧 생명의 자리입니다. 제자들에게는 영화롭고 안정된 육적 생명의 지상 거처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누릴 아버지 나라의 거처가 마련될 것입니다.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요한 14,3)
아버지의 집, 그곳은 아버지와 아들의 거처일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 사랑하시고 또 그분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도 허락된 거처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이미 자리가 있다는 건 말 그대로 구원의 약속입니다. 결코 변하지 않고 번복되지 않을 구원의 보증이지요.
제1독서에서는 말씀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합니다.
"이 구원의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파견되셨습니다."(사도 13,26)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파견하심으로써 당신의 구원 의지를 이루십니다. 예수님이 곧 하느님의 말씀이시고, 그 말씀의 실현이시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과 현존 자체가 하느님 구원 의지의 확고한 표현이고 완성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이천 년 전 팔레스티나 지역에서 일어난 일회성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 매일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말씀"으로 우리에게 파견되어 오시니까요. 주님의 말씀이 어느날은 우리 심금을 울리고 또 어느날은 복잡하고 바쁜 일정에 밀려 버리기도 하시지만, 깨어서 말씀에 귀기울이는 이에게 그분 말씀은 변치 않는 구원의 보증입니다.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사도 13,33)
하느님의 이 말씀은 성경 안의 한 사건으로 머물지 않고,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자신 안에 육화하시도록 허용하는 모든 이에게 매일 실현되는 약속입니다. 주님은 말씀에 목말라 당신 앞에 모여든 이들에게 잉태되시고 출산되시면서, 동시에 말씀을 받아들여 말씀이 된 이를 낳으십니다. 말씀을 품어 말씀과 하나된 이는 그래서 매일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하느님의 아들/딸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예수님은 우리와 아버지를 잇는 유일한 길이십니다. 우리는 말씀에 머무르고 성체를 모심으로써 예수님과 하나 되어 아버지께 나아갑니다.
나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자선과 나눔을 게을리하지 않는 이라도
여전히 들러붙는 악습과 죄악으로 자신의 구원에 의문이 들 때가 있을 겁니다. 이렇게 불완전하고 못난 자신이 과연 하느님 나라에 갈 수있을지 두려움마저 들 수도 하지요. 그럴 때는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는 예수님 말씀에 희망을 걸고, 부족한 자신을 인내하며 말씀께서 자신을 정화해 주시도록 겸손히 드리고 온전히 내어맡겨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아버지 안에 우리의 거처가 있습니다. 반드시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부족하나마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과 함께 말씀 안에서 '우리의 거처'로 나아가는 여정 되시길 기원합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구원을 보증해 주시는 은총의 선물이랍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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