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57-66.80)
<회개의 유효기간(?)>
우리 교회는 예수님의 성탄에 대해서
'오늘 우리에게 오신'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천 년 전의 옛날 일이 아니라 '오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례자 요한의 탄생은 옛날의 일일까, 오늘의 일일까?
이 물음은, 세례자 요한의 임무는 예수님께서 오심으로써 끝난 것일까,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것일까? 라는 물음이기도 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했던 일은
메시아의 활동을 준비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회개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인간 요한의 지상 생애는 죽음으로써 끝났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요한이라는 예언자를 통해서 하신 일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언자 하나가 죽었다고 해서
하느님께서 일을 못하시게 되는 것도 아니고,
인간들이 예언자 하나를 죽인다고 해서
하느님의 일을 막거나 끝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메시아는(예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고,
예수님을 맞아들이기 위해서 회개하는 일은
항상 계속되어야 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세례자 요한의 탄생은 옛날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를 각성시키는 오늘의 일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그곳에 들어갈 기회가 아직 있고,
또 예전에 기쁜 소식을 들은 이들은
순종하지 않은 탓으로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였기에,
하느님께서는 다시 '오늘'이라는 날을 정하셨습니다.
앞서 인용한 대로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다윗을 통하여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를 듣거든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 마라.'
하고 말씀하실 때에 그리하신 것입니다(히브 4,6-7)."
"어떤 이들은 미루신다고 생각하지만
주님께서는 약속을 미루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여러분을 위하여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2베드 3,9)."
'회개'는 '오늘' 해야 하는 일입니다.
이 말은 미루지 말고 당장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날마다 해야 하는 일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어제 했으니 오늘 안 해도 되는 것도 아니고,
오늘 한다면 내일은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회개의 유효기간은 없습니다.
지금 말하고 있는 '회개'는 '삶' 전체가 주님과 일치되는 것을 뜻합니다.
(물론 지은 죄를 뉘우치는 것도 당연히 포함됩니다.)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루카 3,5)."
회개는 우리에게 오신 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이기도 하고,
우리가 주님께로 잘 가기 위한 노력이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이란 세속 한가운데를 가로질러서 주님께로 나아가는
외줄타기 같은 것입니다.
그 줄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중심을 잘 잡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개는 말로만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루카 3,8)."
날마다 회개하고 있음이 '삶'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항상 회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극기 고행의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주님과 함께 살았던 삶(루카 1,66)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또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치우시어,
알곡은 당신의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버리실 것이다(루카 3,16-17)."
잎은 무성하지만 열매는 없는 무화과나무(마르 11,13),
즉 겉으로 보기에만 신앙생활을 잘하고
속으로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바로 쭉정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루카 18,9-14)'를 통해서
그런 사람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십니다.
그 비유에 나오는 바리사이는 죄도 짓지 않고
단식도 자주 하고 십일조도 잘 바치는 등,
겉보기에 완벽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루카 18,14).
그의 삶의 중심에 주님은 없고 자기만 있었기 때문이고,
사랑은 없고 이기심만 있었기 때문이고,
겸손하지 않고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는 잘못한 일이 없고 잘한 일만 있다는 그 교만은
'믿음 없음'을 드러내는 일이고,
자신이 쭉정이라는 것을 스스로 나타내는 일입니다.
우리는 실제로 뭔가 업적을 많이 쌓았더라도 겸손하게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루카 17,10).' 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비유에 나오는 바리사이처럼
그것을 자랑하고 과시한다면 '쭉정이'로 전락하게 됩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서 말하면서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루카 3,16).'
라고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었습니다.
그의 겸손은 그 자신이 바로 '알곡'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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