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3년 6월 28일 다해 (성 이레네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dariaofs 2013. 6. 28. 09:36

 

                                                                             (리옹의 성 이레네오)

                                                                                   (마태 8,1-4)

 

 

<내가 원한다. 깨끗해져라.>

 

"그때에 어떤 나병 환자가 다가와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곧 그의 나병이 깨끗이 나았다(마태 8,2-3)."

 

'하실 수 있습니다.' 라는 병자의 말은 예수님의 능력을 믿고 있다는 뜻입니다.

'깨끗하게 하다.' 라는 말은, 여기서는 나병의 치유를 뜻합니다.

그러나 나병을 하나의 상징으로 생각하면,

또는 '깨끗하게 하다.'를 넓은 뜻으로 생각하면,

'하느님 백성이라는 공동체로 들어가게 하다,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거룩하게 만들다.' 라는 뜻으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고자 하시면'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능력은 믿는데 예수님의 의향은 알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지금 병자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는 것은

모든 권한을 가지고 계신 분으로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아직 부족한 상태입니다.

예수님의 의향과 의지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으려면 예수님의 능력도 믿어야 하고,

권한도 믿어야 하고, 의향과 의지도 믿어야 합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원문대로 직역하면, '나는 원한다. 깨끗해져라.'입니다.

사람들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사람들의 거룩함을 회복시켜서 구원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일은 곧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마태 18,14)."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일을 예수님도 원하셔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람들이 메시아를 청해서 그 간청에 응답하셔서 오신 것이 아니라

메시아께서 오셔서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맨 처음에 하느님을 믿고 섬긴 사람은 아브라함인데,

아브라함이 먼저 하느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먼저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아브라함은 그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스승이 되어 달라고 청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들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자기가 종교와 신앙을 선택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요한 15,16)."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에페 1,3-5)."

 

그렇다면 지금 어떤 병자가 자기의 병을 고쳐 달라고 예수님께 간청하고

예수님께서 그의 청에 응답을 하시는 장면은 겉으로만 그렇게 보일 뿐이고,

실제로는 예수님께서 먼저 원하신 일에 병자가 응답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다 깨끗하게 되기를 원하시고 부르시는 분인데,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은 자기를 깨끗하게 해 달라고 간청하게 되고,

응답하지 않는 사람은(깨끗하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간청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로 들어간 사람들은 깨끗해진 사람들입니다.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빠는 이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는 권한을 받고,

성문을 지나 그 도성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묵시 22,14)."

따라서 그 나라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깨끗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감히 자기 마음대로

'나는 깨끗하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너는 깨끗하다.' 라고 선언하는 것은

하느님(예수님)의 권한이기 때문입니다.

 

최후의 만찬 때에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너희는 깨끗하다. 그러나 다 그렇지는 않다(요한 13,10)."

사도들은 부르심에 응답했고, 예수님의 은총으로 깨끗해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배반자 유다는 깨끗하다는 선언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제자가 되라는 부르심에는 응답했지만,

제자로 사는 일에는 온 마음과 온 삶으로 제대로 응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자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자로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신앙인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앙인으로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