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3년 6월 27일 다해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 주교 학자)

dariaofs 2013. 6. 27. 07:53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 주교 학자)

                                                                                 (마태 7,21-29)

 

 

<주님의 뜻을 실천하여라.>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하고 선언할 것이다(마태 7,21-23)."

 

요즘에도 '믿기만 하면' 천국 간다고 선전하는 종파가 있는데,

믿음만으로는 안 되고,

아버지의 뜻을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분명한 선언입니다.

 

배반자 유다도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복음을 선포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기적을 행했던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마르 6,12-13)."

 

그런데도 유다가 배반을 하게 된 것은 아마도 '사랑'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아버지의 뜻' 가운데 첫 번째는 '사랑'입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믿었지만 사랑하지는 않았던 것 같고,

사람들을 위해서 기적을 행했지만

사랑이 아니라 의무감으로 행했던 것 같습니다(요한 12,6).

 

바오로 사도는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1코린 13,2).

사랑 없이 행하는 일은 아버지의 일이 아니고,

따라서 그런 일은 하느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리고,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라는 말씀만 보면,

예수님이 무척 냉정하고 차가운 분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 앞에 있는 22절의 사람들의 말을 보면 그게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마귀를 쫓아내고 기적을 행했다고 자기들이 한 일을 내세울 뿐이고,

자기들이 아버지의 뜻(사랑)을 실행하지 않은 것에 대한

반성과 회개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말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들에게는 하늘나라로 들어갈 자격과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마태오복음 25장의 '최후의 심판' 장면에서

왼쪽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과 비슷합니다.

그들은 '주님, 저희가 언제...' 라고 하면서

자기들이 사랑 실천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성하지 않고 있습니다(마태 25,44).

 

또 그들의 모습은 루카복음 15장의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 나오는 큰아들과 같은 모습입니다.

아버지는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나는 늘 너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라고 하면서 타이르는데,

큰아들은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화만 내고,

집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랑 없는 사람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라고 선언하시는 상황은

아마도 실제로는 사람들 쪽에서 예수님께

'나는 당신을 모른다. 그러니 당신에게서 떠나겠다.'

라고 말하는 상황이 될 것입니다.

 

유다도 그렇게 예수님에게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예수님은 유다가 배반을 결심했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그를 끝까지 사랑하셨는데(요한 13,1),

유다는 자기 발을 씻어주시는 예수님을 보면서도 마음을 돌리지 않았고,

예수님을 떠났고, 배반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의 인생은

모래 위에 지은 집이 완전히 무너지는 것처럼(마태 7,26-27)

무너지고 멸망했습니다.

 

나중에 최후의 심판 때에 혹시 유다는(또는 우리도)

예수님께 이렇게 애원할지도 모릅니다.

"제가 잘못한 일이 좀 있어도, 그래도 잘한 일도 있으니

정상참작을 해 주실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예수님은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심판하려고 오신 분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오신 분이고,

모든 죄인을 용서하려고 오신 분입니다.

그러나 정상참작을 해 주기를 바란다면

심판이 닥치기 전에, 지금 회개해야 합니다.

최후의 심판은 글자 그대로 '최후의' 날에 이루어지는 일이고,

더 이상 기회가 없는 때입니다.

그 날은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재판하는 날이 아니라

유죄가 확정된 사람들에게 처벌을 선고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사랑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고(야고 2,17),

죽은 믿음은 그 자신을 죽이게 됩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믿음과 결합된 사랑이 기적을 일으키고,

그 사랑이 사람들을 살리고, 그 사랑이 자기 자신도 살리게 됩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