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3년 7월 3일 다해 (성 토마스 사도 축일)

dariaofs 2013. 7. 3. 02:52

 

                                                                                    (요한 20,24-29)

 

 

<의심>

 

'믿지 않음', 또는 '의심'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믿고 싶지 않아서 안 믿는 것이고,

두 번째는 믿고 싶지만 안 믿어져서 못 믿는 것입니다.

 

믿고 싶지 않아서 안 믿는 경우의 좋은 예가 요한복음 9장의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고쳐 주시는데(요한 9,7),

바리사이들은 그 일을 안식일에 했다는 이유로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기적을 인정하지 않습니다(요한 9,16).

바리사이들은 그 눈먼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를 의심합니다(요한 9,19).

그들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안 믿었고, 믿기를 싫어했고,

그래서 눈앞에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의심하기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요한 9,41).

믿으려는 마음이 아예 없는 것은 영혼이 눈먼 상태이고,

그것은 신체적으로만 눈먼 사람보다 더 눈이 먼,

비참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믿고 싶지만 안 믿어져서 못 믿은 경우의 좋은 예는 토마스 사도입니다.

토마스 사도는 다른 사도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말하자

그 말을 믿지 못합니다.

그는 자기가 예수님의 상처 자국을 직접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요한 20,25).

토마스 사도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싶었을 것이고,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은 너무나도 엄청난 사건이고, 믿기 어려운 사건입니다.

믿고 싶지만 안 믿어지는 일이었기 때문에 못 믿은 것입니다.

 

나중에 사도들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께서는 토마스 사도에게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요한 20,27).

이 말씀은 토마스 사도의 의심을 꾸짖으시는 말씀이 아니라,

그의 소망에 응답하시는 말씀입니다.

그가 믿고 싶어 한다는 것을,

또 믿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시고,

확실히 믿을 수 있도록 표징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에는 토마스 사도의 의심과 믿음만 기록되어 있는데,

공관복음을 보면,

다른 사도들도 토마스 사도와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마태 28,16-17)."

"마침내, 열한 제자가 식탁에 앉아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되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마르 16,14)."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셨다.

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루카 24,40-41)."

 

네 복음서의 부활 이야기를 모두 종합하면,

토마스 사도만 예수님의 부활을 못 믿었다고 말하는 것은

불공평한 일이 됩니다.

다른 사도들도 모두 그랬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이 믿지 못한 것은

믿고 싶지 않아서 안 믿은 것과 구별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판관 기드온의 이야기가 토마스 사도의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하느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기드온을 부르시고,

그에게 민족을 구원하는 임무를 맡기셨을 때,

그는 하느님께 표징을 보여 달라고 요청합니다(판관 6,17).

하느님께서는 기드온을 꾸짖으시기는커녕

기꺼이 세 번이나 표징을 보여 주십니다(판관 6,21.38.40).

기드온은 천사의 말을 믿고 싶어 했을 텐데

자기의 처지를 생각할 때 너무 엄청난 일이었기 때문에

안 믿어져서 못 믿었을 것입니다.

 

어떻든 믿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믿을 수 있게 도와주는 은총을(표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란, 인간 쪽에서는 '믿으려는 노력'이고,

하느님 쪽에서는 당신이 선택하신 사람에게 주시는 은총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믿고 싶지 않아서 안 믿으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습니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표징을 보고 싶다고 요구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

그러나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라고 하시면서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셨습니다(마태 12,39).

 

요즘에도 믿으려는 마음 없이, 또 믿음을 반박하기 위해서

'기적을 보여 주면 믿겠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기적이 일어나도 그것을 과학적으로 해명하려고 시도하면서

그 일이 기적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든 증명하려고 애를 쓸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안 믿는 이유를 계속 만들어낼 것입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