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9,14-17)
<새 천과 새 포도주>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지기 때문이다(마태 9,16)."
이 말씀을 겉으로만 보면,
헌 옷이 찢어지는 것을 걱정하는 말씀처럼 보이는데,
원래 예수님 말씀의 의도는 그게 아닙니다.
이 말씀은 헌 옷이 아니라 새 옷을 보호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헌 옷을 꿰매기 위해서 새 옷을 조각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새 천 조각'은 '새 옷의 조각'일수도 있고,
글자 그대로 '새 천의 조각'일 수도 있는데,
어떻든 헌 옷 때문에 새 천을 조각내지 말라는 것이 예수님 말씀의 뜻입니다.)
"또한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둘 다 보존된다(마태 9,17)."
이 말씀도 역시 헌 가죽 부대가 터지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새 포도주가 쏟아지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새 천'과 '새 포도주'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정신을 뜻하고,
'헌 옷'과 '헌 가죽 부대'는 유대교의 관습과 제도 등을 뜻합니다.
그래서 유대교의 낡은 관습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예수님의 가르침과 정신을 훼손하면 안 된다는 것이 예수님 말씀의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침이 새것이라고 해서
전에 없었던 새로운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원래부터 있었던 하느님의 가르침을
사람들이 제대로 실천하게 하기 위한 가르침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
예수님의 말씀에서 '새것' 은
단순히 시간적으로 새로운 것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옳은 것, 선한 것, 하느님 뜻에 부합하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새롭기 때문에 옳은 가르침이 아니라,
옳은 가르침이기 때문에 새로운 가르침입니다.
만일에 시간과 시대만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천 년 전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낡은 가르침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과 선(善)은, 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침은
아무리 긴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 영원히 새로운 가르침입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마태 24,35)."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그대로 신앙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근본주의자라고 비판하고,
보수주의자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비판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또 그리스도교를 보수 종교라고 표현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새 천과 새 포도주의 비유는 진보와 보수에 관한 가르침이 아니라,
무엇이 선(善)인가, 무엇이 악(惡)인가? 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선과 악의 기준은 새로운 것인가, 낡은 것인가? 가 아닙니다.
그 기준은 하느님의 뜻과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새로 생긴 것들 가운데에도 선한 것이 있고, 악한 것이 있습니다.
오래된 것들 가운데에도 선한 것이 있고, 악한 것이 있습니다.
새롭든지 오래 되었든지 간에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반대되는 것이라면 버려야 하고,
하느님의 뜻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면
받아들여서 보존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5장에 기록되어 있는 예루살렘 사도 회의를 보면,
사도들은 그 회의에서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 신자들이 지켜야 할 네 가지 규정을 정했습니다.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지 말 것, 피를 먹지 말 것,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를 먹지 말 것, 불륜을 멀리할 것.
이 규정은 새로운 율법이 아니라 율법의 실천 방식을 바꾼 것이었고,
이방인 출신 신자들을 유대교의 관습과 제도에서 해방시킨 일이었습니다.
(당시의 현실에 맞게 지킬 것은 지키고, 버릴 것은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 네 가지 규정은 당시의 상황에서는 꼭 필요한 것이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차츰 희미해졌습니다.
그래도 규정 속에 들어 있는 우상숭배 금지 계명과 불륜 금지 계명은
여전히 유효하게 남아 있습니다.
실천 방식은 바뀌어도 하느님의 계명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시대에 맞게 실천 방식이 바뀌겠지만,
변하지 않는 것(또는 인간이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것)은
하느님의 뜻과 선입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1코린 13,8)."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1코린 13,13)."
~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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