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9,32-38)
<일꾼, 자녀, 상속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8)."
신앙인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들이면서
동시에 아버지의 일을 도와드리고, 그 일을 함께 하는 일꾼입니다.
(품삯을 받고 자기 할 일만 하면 그만인 그런 일꾼이 아니라,
자녀로서 아버지의 일을 함께 한다는 뜻의 일꾼입니다.)
또 우리가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한다고 해서
하느님께서 어디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을 보내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일꾼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고, 아버지의 자녀가 되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라는 말씀은,
'세상 사람들이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그들을 인도해 달라고 청하여라.'입니다.
그렇다면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라는 말씀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구원해야 하는데 호응하는 사람이 적다.'로 해석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모든 신앙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확대해서 생각하면,
이 말씀은 '너희는 모두 일꾼이 되어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일꾼들이(선교사들이) 전해 주는 복음을 받아들여서 신앙인이 된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그 순간에 그 자신도 새로운 일꾼이 됩니다.
(선교활동은 세상 사람들을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하느님의 일꾼이 되게 하는 일입니다.)
신앙인들은 신앙인이 된 것으로 그치면 안 되고,
아버지의 일을 도와드리고 그 일을 함께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청하시면 될 텐데 왜 제자들에게 시키셨을까?"
아버지의 일은 곧 자녀들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품삯을 받고 남의 밭에서 일하는 일꾼이라면
일꾼이 모자라든 남든 상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가 해야 할 일만 하고 자기의 품삯만 받으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밭에서 일하는 자녀라면
그 밭의 일을 모두 마무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고,
일손이 모자라는 것을 걱정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아버지'이신 분이고,
하느님 나라는 남의 나라가 아니라 우리나라이고,
하느님의 일은 우리의 일입니다.
(신앙인들은 교회의 일을 '내 일'로 생각해야 하고,
'내가' 곧 교회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 내용과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작은아들은 일하기 싫어서(놀고 싶어서) 아버지 곁을 떠났습니다.
그랬다가 회개하고 돌아왔는데, 돌아온 다음에는
아마도 보속하는 뜻에서 성실한 아들로서 열심히 일했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작은아들에게 일하라고 명령하지 않아도
그 자신이 스스로 알아서 ‘아들로서’ 열심히 일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큰아들은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루카 15,29)."
큰아들은 아들로서 일한 것이 아니라 종으로서 일을 했습니다.
또 그가 하는 말은 품삯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불평하는 말과 같습니다.
아버지는 큰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루카 15,31)."
아버지와 늘 함께 있는 것 자체가 큰 축복이고 사랑입니다.
또 아버지의 것이 다 아들의 것이니 아버지의 일은 곧 아들의 일이고,
따라서 아버지에게 품삯이나 대가를 요구할 이유가 없습니다.
큰아들이 한 말 가운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큰아들에게 무슨 명령을 했을까?
한 순간도 쉬지 말고 종처럼 일만 하라고 명령했을까?
아버지가 큰아들에게 '아들의 권리'는 안 주고 '종의 의무'만 주었을까?
만일에 그랬다면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큰아들 자신이 자기가 아들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자기 자신을 종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는 '사랑'이 아니라 '의무감'으로 일했고,
자기의 일이 아니라 남의 일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신 것은
사람들을 하느님의 종으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로 회복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이 된 것은
비유 속의 큰아들 같은 종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자녀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품삯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속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인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로마 8,17)."
예수님과 함께 상속을 받으려면 예수님과 함께 일해야 합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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