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10,7-15)
<소유와 무소유>
"...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마태 10,8-10)."
예수님의 이 말씀을
'무소유'나 '청빈'을 실천하라는 가르침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말씀은 '무소유와 청빈'에 관한 가르침이 아니라,
'무엇을 소유할 것인가?'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들을 온전히 소유할 수 있다면,
다른 것들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 됩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라는 말은
영적인 것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것까지도 포함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돈이라는 것 자체가 아예 필요 없다.'가 아니라,
'필요한 돈은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다.'입니다.
이 가르침은 재물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연결됩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
이 말씀은 '하느님만' 섬겨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세속의 재물을 섬기지 않으면서 하느님도 섬기지 않는다면,
세속의 재물을 섬기지 않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느님을 제대로 섬겨야 세속의 재물을 안 섬기는 일이 의미가 있습니다.
재물을 섬기지 않는다는 말은,
재물을 주님으로 섬기지 않고 노예로 삼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노예로 삼을 자신이 없다면 멀리 해야 할 것이고...)
무소유에 집착하다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들마저도 받기를 거부하는 모습은
악령에 관한 가르침에 연결됩니다.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비어 있을 뿐만 아니라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이 악한 세대도 그렇게 될 것이다(마태 12,43-45)."
악령을 쫓아냈다면 그 빈자리를 성령으로 채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그냥 비어 있는 채로 놓아두면
더 많은 악령이 들어오게 된다는 것이 예수님의 경고입니다.
'무소유'에 집착하면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들마저도 받기를 거부한다면,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고,
악령이 들어갈 자리만 만들어 놓은 것이 됩니다.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일꾼을 당연히 먹이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하늘에서 직접 먹을 것을 내려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주실 것입니다.
사랑으로 주는 것이니 감사히 받으면 됩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라는 말씀도 같습니다.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이미 거저 주셨으니
너희도 다른 사람에게 거저 주어라.'입니다.
제자들은 이미 뭔가를 '받아서 가지고 있는' 상태이고,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됩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복음, 평화, 은혜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물질적인 것들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선교 여행을 다닐 때,
배를 타게 되면 뱃삯을 냈을 것이고,
국경을 지나갈 때에는 통행세를 냈을 것이고,
여관에 들어갔다면 여관비를 냈을 것이고,
날마다 먹는 음식을 마련할 때에도 돈을 사용했을 것입니다.
돈 없이는 활동할 수 없었으니, 필요한 돈은 늘 가지고 다녔을 것입니다.
그 돈은 주로 자기가 직접 노동을 해서 벌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자들의 후원을 아예 안 받은 것은 아닙니다(필리 4,15-20).
예수님과 사도들이 함께 여행을 다닐 때에도
완벽하게 돈 없이 다닌 것은 아닙니다.
돈 주머니 담당자가 있었던 것을 보면(요한 12,6),
필요할 때 쓰기 위한 최소한의 돈은 가지고 다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담당자가 배반자 유다였다는 것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무소유의 정신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무소유가 신앙생활의 목표는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들을 소유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진짜 목표입니다.
우리는 정말로 가지고 있어야 해서 가지고 있는 것과
필요해서 가지고 있는 것과
소유욕 때문에 가지고 있는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무소유를 실천한다고 하면서 자기 자신은 노동도 자립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강요하고 그들에게 고통을 준다면,
그것은 죄입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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