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10,24-33)
<박해, 생명>
예수님께서 박해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0,26ㄱ)."
이 말씀은 제자들이(신자들이) 박해자들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또는 두려워하게 될 것을)
예수님께서 알고 계신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알고 계신다는 것은 도와주시겠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박해자들에 대한 두려움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의 본성적인 두려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믿음이 부족하다고 탓할 수도 없고,
나약하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박해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두려움 자체를 부정하는 말씀이 아니라
(또는 죽는 것을 무서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진짜로 무서운 일이 무엇인지를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마태 10,28)."
이 말씀에는 '진짜로 두려운 것은 육신의 죽음이 아니라
영혼의 죽음이다.'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죽는 것이 무서운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육신의 죽음이 아니라 영혼의 죽음이 진짜로 무서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신만 죽일 수 있는 박해자들은 두려워할 이유가 없고,
영혼과 육신을 함께 멸망시킬 수 있는 하느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은 사실은 '무서움'이 아니라 '경외심'입니다.
하느님은 무서워서 섬기는 분이 아니라 사랑해서 섬기는 분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우리를 살리시는 분입니다.
(박해자들은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자들이고...)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마태 10,30-31)."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두셨다.' 라는 말씀은,
'아주 세세하게 보살펴 주신다.' 라는 뜻이기도 하고,
사람의 모든 것은 하느님의 권한에 속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박해자들도 하느님의 피조물일 뿐이고,
그들의 모든 것도(그들의 목숨도) 하느님의 권한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니 박해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라는 말씀은
'사람이 세상 만물 가운데에서 가장 귀하다.'
(또는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가장 귀하게 여기신다.) 라는 뜻입니다.
그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얻으려면 신앙을 증언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마태 10,32)."
박해를 받고 죽게 되더라도 박해자들 앞에서 자기의 신앙을 증언해야 하고,
인생이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신앙인의 모습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안다고 증언해 주신다는 말씀은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 10,39)."
이 말씀은, '육신의 생명만 구하려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잃게 될 것이고,
예수님을 위해서 육신의 생명을 버리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입니다.
종교박해가 아니더라도 비슷한 상황이 많이 생깁니다.
취직을 하기 위해서
자기의 종교를 버리고 그 직장에서 요구하는 종교로 개종하는 경우,
출세와 승진을 위해서
자기의 종교를 버리고 직속상관과 같은 종교로 바꾸는 경우,
병의 치료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다른 종교를 찾는 경우,
세속 생활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버리는 경우... 기타 등등.
예수님께서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마태 10,33)."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사정은 생각하지도 않으시고
(정상참작 같은 것은 하지 않으시고)
사람들의 행동만 보시고 그대로 앙갚음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모른다고 하시기 전에 이미
'그 자신'이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면서 떨어져 나간 상황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과 생명을 주시려고 하는데,
'그 자신'이 안 받겠다고 하면서 거부하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종교박해 때에 배교를 했던 사람들은
나중에 회개하고 다시 교회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한 번 배교했다고 그것만으로 영구적으로 파문해버리는 교회는 아닙니다.)
아무튼 죽는 것은 누구에게나 무서운 일입니다.
그러나 영혼까지 영원히 멸망해버리는 것이 진짜로 무서운 일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목숨 걸고' 해야 하는 생활입니다.
(육신의 목숨을 걸고 영혼의 생명을 얻고자 하는 생활...)
신앙생활은 시간 여유가 있을 때나 하는 취미생활이 아닙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
'강 론 말 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13년 7월 15일 다해 연증 제15주간 월요일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0) | 2013.07.15 |
|---|---|
| 2013년 7월 14일 다해 연중 제15주일 (0) | 2013.07.14 |
| 2013년 7월 12일 다해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0) | 2013.07.12 |
| 2013년 7월 11일 다해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성 베네딕도 아빠스 기념일) (0) | 2013.07.11 |
| 2013년 7월 9일 다해 (성 아우구스티노 자오롱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0) | 2013.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