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3년 8월 23일 다해 연중 제20주간 금요일(리마의 성녀 로사 동정 기념)

dariaofs 2013. 8. 23. 00:30

                                                               (리마의 성녀 로사)

                                                                  (마태 22,34-40)

 

 

<사랑으로>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마태 22,37-40)."

 

이 말씀을 "'사랑으로써'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

또 '사랑으로써' 이웃을 대해야 한다."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 라는 계명들은

의무감이 아니라 사랑으로 지켜야 합니다.

사랑이 없다면 제대로 지킨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주일을 거룩히 지내는 것이 계명이기 때문에

가기 싫은데도 억지로 주일미사에 간다면

주일을 제대로 지킨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주님을 만나고 싶어 해서 주일미사에 가고,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서 주일 하루를 온전히 주님께 바치는 것,

그것이 제대로 지키는 것입니다.

다른 계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 없이 겉으로만 효도한다면, 그것은 효도가 아니라 부모를 속이는 일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믿음이 있고,

남을 위해 자기의 재산과 목숨까지 내놓는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말합니다(1코린 13,1-3).

그런데 바오로 사도의 말에 대해서,

"사랑이 없는데도 남을 위해서 자기의 재산과 목숨을 내놓을 수 있을까?

그런 일 자체가 사랑이 아닌가?" 라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 대해서 이미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마태 6,1-2)."

사랑 없는 선행은 위선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사실 다른 사람의 신앙생활과 선행이

위선인지 진짜인지 구분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심지어 자기의 신앙생활과 선행이 위선인지 아닌지를

자기 자신도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 오직 사랑으로만 실천하려고 계속 꾸준히 노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나의 신앙생활과 선행이 위선이 아니라 진짜라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께서 평가하실 것입니다(마태 6,4).

 

"......을 하지 마라." 라는 계명들 같은 경우에는

사랑이 없어도(아무것도 안 해도) 잘 지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지 마라. 간음하지 마라. 도둑질을 하지 마라.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 라는 계명들은

아무런 일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잘 지키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계명들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것만으로는 계명을 지켰다고 할 수 없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마르 3,4)"

라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좋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나쁜 일을 하는 것과 같고,

목숨을 구하지 않는 것은 죽이는 것과 같다.'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 사람을 ‘사랑으로써’ 살리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십계명 제5계명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 됩니다.

 

'탈렌트의 비유'에 나오는 세 번째 종은

자기가 받은 탈렌트를 땅 속에 숨겨 두었다가(마태 25,18)

그대로 주인에게 돌려줍니다(마태 25,25).

그는 자기가 받은 탈렌트로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주인은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라고 그를 꾸짖으면서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라고 명령합니다(마태 25,26.30).

 

주인이 그를 꾸짖은 것은 그가 아무것도 안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세 번째 종이 그렇게 한 것은 두려움 때문입니다(마태 25,25).

그는 주인을 사랑하지 않았고, 두려워하기만 했습니다.

'사랑 없는 두려움'이 그를 소극적인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그처럼 사랑 없이 두려움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해서 하느님 나라에 가기를 소망하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그저 지옥에 가는 것이 두려워서

그것을 피하려고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옥에 가는 것을 피하려고 노력하면 지옥을 피할 수는 있겠지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없다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 나라는 들어가기를 간절하게 희망하고

그 희망을 능동적인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