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5,1-32))
<되찾은 양의 비유>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루카 15,1-2)."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하는 말은 마치
'왜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악성 전염병자들과 어울리는가?'
라고 비판하는 말과 같습니다.
부정한 죄인들과 어울리고 함께 음식을 먹으면 죄인들의 부정에 오염이 되어서
같은 죄인이 된다는 것이 당시의 사고방식이었습니다.
'세리들과 죄인들'이라고 표현된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죄인들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또 그들이 진짜로 죄인들이었는지,
회개를 했는지, 회개하기 전이었는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그 사람들을 바이러스 피하듯이 피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들을 물리치지 않고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의사는 전염병 환자라고 해도 치료를 위해서 환자와 접촉을 합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죄인들을 받아들이는 의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깨우쳐 주기 위해서
'되찾은 양의 비유(되찾은 은전의 비유,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잃은 양'은 '세리들과 죄인들'이라고 표현된 그 사람들입니다.
'잃었다가 되찾은 양'은 '마태오'(마태 9,9)와 '자캐오'(루카 19,2) 같은 사람들,
또는 넓은 뜻으로는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나서는 목자의 모습은(루카 15,4)
'한 마리도' 잃으면 안 된다는 목자의 심정을 나타냅니다.
그 심정이 바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마태 18,14)."
비유의 내용으로는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가리키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목자이신 예수님을 충실하게 잘 따르는 양떼였던 것은 아닙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자기들은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자가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다는 것은
그들을 회개시키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목자의 부재'를 겪어야 목자를 절실하게 찾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 대해서 안심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포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광야는 고난과 시련의 장소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고난과 시련을 겪으면서 하느님을 찾게 되고,
그래서 결국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하게 된다면
광야는 은총의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찾지 않는다면 그냥 버림받은 장소가 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기준으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도 잃은 양입니다.
다 똑같은 죄인들이라는 것입니다.
차이점은 세리들은 예수님께로 모여들었고,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멀리했다는 점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도 잃은 양인데,
목자에게로 가려고 애를 쓰기는커녕 목자를 거부하는 양입니다.
목자가 없는 상태라면 아흔아홉 마리의 양들도 잃은 양이 될 뿐입니다.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늘에서 더 기뻐한다는 말씀은(루카 15,7),
'하느님은 의인들에 대해서는 덜 기뻐하신다.' 라는 뜻이 아닙니다.
의인들은 언제나 하느님의 기쁨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슬픔이었던 죄인이 회개를 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 기쁨이 더 크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자기는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자칭 의인들로 해석한다면,
이 말은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회개하지 않는 태도와 교만을 가리키는 말이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회개하지 않는 태도와 교만 때문에 슬퍼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하는 죄인 하나 때문에 더욱 기뻐하시게 될 것입니다.
'잃은 양'은 목자가 실수해서 잃어버린 양이 아닙니다.
양 자신이 잘못해서 길을 잃은 양입니다.
또 '잃은 양'은 어쩌다가 길을 잃긴 했지만
목자에게로 되돌아가기를 갈망하는 양입니다.
'세리들과 죄인들'이라고 표현되어 있는 그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는 것은(루카 15,1)
구원받기를 갈망하면서 목자를 찾아 나섰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잃은 양'이지만 '목자를 찾는 양'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도 실제로는 잃은 양이었지만,
자기들은 길을 잃지 않았다는 자만심과 교만에 빠져서,
목자를 찾기는커녕 자기들은 목자가 없어도 스스로 알아서 길을 잘 간다고
착각했던 자들이었습니다.
아흔아홉 마리의 양이든 떨어져 있는 한 마리 양이든
모두 다 목자가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지금 나는 무엇인가?
하느님께 기쁨을 드리는 되찾은(회개한) 양인가?
아니면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우기면서
하느님께 슬픔을 드리는 자칭 의인인가?"
~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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