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6,39-42)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복음을 전하는 것은>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루카 6,40)."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은 예수님 뒤를 따라가는 사람입니다(루카 9,23).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처럼 예수님 옆에서 예수님과 함께 걷는다고 해도
신앙인이 걷는 길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입니다.
아무도 예수님보다 앞에서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이고(요한 14,6),
예수님만 사람들 앞에서 사람들을 그 길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의 수난 예고 말씀을 듣고 만류했을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내게서 물러가라(마태 16,23)."
라고 말씀하신 것이 바로 그런 뜻이었습니다.
"내게서 물러가라." 라는 말씀을 원문대로 직역하면 "내 뒤로 가라."인데,
이 말은 '제자의 본분을 지켜라.' 라는 뜻입니다.
제자의 본분을 지킨다는 것은
'스승의 뒤에서' 스승이 가는 길을 충실하게 '따라가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마태 23,8)."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마태 23,10)."
신학이나 성서학을 좀 안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잘났어도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사람일 뿐입니다.
사목자들은 자기의 양들이 아니라
예수님의 양들을 돌보는 사람들입니다(요한 21,15).
예수님께서 하시지 않은 말을 양들에게 할 수 없고,
예수님께서 가시지 않은 길로 양들을 데리고 갈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로만 양들과 함께 가야 합니다.
만일에 자기 생각대로 자기만의 길을 가면서
다른 사람들을 그 길로 데리고 간다면, 그것이 바로 이단입니다.
이것은 사목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신앙인에게 다 해당되는 원리입니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루카 6,39)"
예수님을 먼저 알게 되었고, 먼저 믿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을 인도할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길을 어떻게 가셨는지를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하고,
자기 자신이 그 길을 제대로 가고 있어야 다른 사람을 인도할 수 있습니다.
자기는 다른 길을 가면서, 즉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예수님께서 가신 길로 인도할 수는 없습니다.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루카 6,42)."
이 말씀에서 '들보'와 '티' 라는 말을
흔히 도덕적인 결점이나 죄나 잘못 같은 것으로 해석하는데,
넓은 뜻으로 생각하면, 예수님을 따르는 생활에서 뭔가 부족한 점들을
모두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교리와 성경을 잘 모르면서, 또는 잘못 알고 있으면서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로,
또는 자기는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거나 자만심에 빠져서
다른 사람들에게 교리와 성경을 가르친다면
배우는 사람들도 잘못된 교리와 잘못된 성경 해석을 배우게 되고,
결국 빗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종교를 창시해서 자기가 만든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면,
예수님을 믿고 있고,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라면,
예수님의 말씀만을 전하면서
그 말씀대로 살고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세속에 물들어서 복음 정신대로 살지 않고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자기는 먹기 싫어서 안 먹는 음식을
맛있으니 먹어보라고 다른 사람에게 권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맛이 없으니 먹지 말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럴 때 그 음식을 먹으려고 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바로 그런 점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
빈손으로 가라고 하신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옷도 지니지 마라(루카 9,3)."
제자들이 가서 할 일은 복음을 전하는 일인데,
복음을 제대로 전하려면 '복음만' 가지고 가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전하면서
물질적인 것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모순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사실상 '복음의 삶'을 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씀'은 항상 '삶'이 되어야 합니다.
'삶'이 되지 못하는 '말씀'은 그냥 '빈 말'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말씀'이신 예수님의 '삶'은 '말씀'과 완전히 일치된 '삶'이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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