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7,1-10)
<백인대장의 병든 종을 고치시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루카 7,6-7)."
'자격이 없다. 합당하지 않다.' 라는 백인대장의 말은 그의 겸손을 나타냅니다.
겉모습만 보면, 예수님은 식민지 시골의 초라한 유대인 랍비입니다.
백인대장은 그 식민지를 다스리는 로마제국 군대의 장교입니다.
그래서 사적인 이유라고 해도, 백인대장이 유대인 랍비에게
자기 집으로 오라고 명령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황입니다.
그런데 오라고 명령을 하기는커녕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자기에게는 주님을 모실 자격도 없고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대단한 겸손입니다.
그가 아쉬워서 겸손한 척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유대교 회당도 지어 준 사람이었는데(루카 7,5),
이것은 그가 하느님을 믿고 있었음을 뜻하고,
그의 겸손이 신앙에서 우러나온 진짜 겸손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자기가 이방인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아직 유대교로 완전히 개종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또 그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른 것은
단순한 존칭이 아니라 예수님의 권능을 믿고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라는 말은 그의 믿음을 나타냅니다.
그는 예수님은 말씀만 하셔도
'병'이라는 것을 복종시킬 수 있는 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백인대장이 자기 부하들이나 노예들에게 명령하고
그들을 복종시키는 일을 예로 든 것은(루카 7,8)
예수님께서 그렇게 '병'이라는 것에게 명령하면
어떤 병도 예수님 명령에 복종할 것이라고 믿는다는 뜻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 직접 환자를 만나거나
환자의 몸에 손을 대지 않아도
환자를 치료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믿고 있다는 점입니다.
중풍 병자를 평상에 누인 채 들고 온 사람들이
군중 때문에 예수님께 다가가지 못하자 지붕으로 올라가서
기와를 벗겨 내고 그 환자를 예수님 앞으로 내려 보낸 일은(루카 5,18-19)
환자가 예수님과 직접 접촉을 해야만
치료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 행동입니다.
또 병을 고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습니다(루카 6,19).
이것도 역시 예수님과 직접 접촉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백인대장은 예수님께 그저 한 말씀만 해 달라고 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감탄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루카 7,9)."
백인대장이 믿었던 그대로
예수님께서는 멀리서 말씀만으로 백인대장의 종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 환자가 예수님을 알고 있었는지, 믿고 있었는지, 그건 모릅니다.
어떻든 예수님께서는 환자를 직접 만나시지도 않고 그를 고쳐 주셨습니다.
백인대장의 그 믿음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중요한 모범이 됩니다.
우리도 백인대장처럼 '예수님은 한마디 말씀만으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시는 장면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라자로의 무덤 속으로 들어가시지 않았습니다.
그저 무덤 밖에 서서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요한 11,43)." 하고
명령하셨을 뿐인데, 이것도 접촉 없이 말씀만으로 기적을 행하신 일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말씀을 하지 않으셔도
당신의 의지만으로도 인간의 청을 들어주시는 분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어떤 절박한 사정 때문에 기도를 하고 있는데,
어떤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물건을 만지면서,
또는 어떤 특정한 행동을 하면서 소원을 비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다른 종교 사람들만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 교회에서도 흔히 보는 모습입니다.)
만일에 그 기도가 그 장소와 그 물건과 그 행위를 믿기 때문에 하는 기도라면,
그것을 올바른 기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사실상 미신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은 어디에나 계시는 분'
(또는, '예수님은 지금 나와 함께 계시는 분')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도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
어떤 특정한 성지나 성당에 꼭 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
뭔가를 직접 손으로 만져야 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정해진 어떤 고행을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자기가 지금 있는 그곳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해서(정성을 다해서) 기도하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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